▲ 이한구(수원대 경상대학장·객원논설위원)
[경인일보=]국제신용평가기관인 피치(Fitch)가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전망을 '부정적'에서 '안정적'으로 상향조정했다. 지난해 11월 러시아·멕시코·헝가리 등 10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무더기로 하향조정할 때 함께 강등했다가 우리나라만 유일하게 원상복구해준 것이어서 의미가 크다. 전년동기 대비 7월 소비자물가가 9년만에 가장 낮은 1.6%를, 그리고 2분기 국민총소득(GNI) 증가율이 21년만에 최고치를 각각 기록했다. 경제성장률도 5년6개월만에 가장 높은 성장을 시현했으며 금년 중 국제수지 흑자규모가 100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 등 경기 회복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데다 최근 들어 북한리스크까지 완화되었으니 당연한 결과처럼 보인다.

향후 국내경기에 대한 긍정적 신호도 감지된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8월 소비자동향조사에서 소비자심리지수가 5개월 연속 상승하면서 사상최고치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소비심리가 지나칠 정도로 위축되었던 점을 고려할 때 고무적이나 주택가격의 동요는 목에 걸린 가시처럼 껄끄럽다. 서울 강남에서 시작된 집값상승이 빠른 속도로 수도권전역으로 확대된 것이다. 전세난 탓에 변두리로 내몰린 수많은 서민들과 이참에 대박을 터뜨린 주택구입자들의 표정이 대조적이다. 주택공급부족에다 무분별한 도심재개발에 따른 이주수요 급증, 그리고 저금리에 풍부한 유동성까지 겹친 때문이다. M2(광의통화)와 Lf(금융기관 유동성)는 작년 하반기 이래 각각 15%와 12.7%까지 증가한 상황이다. 각종 부동산 관련 규제완화는 금상첨화였다.

덕분에 가계대출이 가파르게 증가했다. 금년 1월부터 7월까지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이 22조6천억원으로 역대최고를 경신, 가계부채는 700조원을 돌파했다. 주택담보대출 순증액이 8월에만 4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빚을 내 주식에 투자하는 개인들도 크게 늘어 증권사의 신용융자규모는 4조5천억원에 이른다. 올 들어서만 무려 200%이상 증가, 종합주가지수가 사상최고를 기록했던 2007년 10월 수준에 육박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최근 들어 신용카드사들마저 대출경쟁대열에 동참한 것이다. 명목국내총생산(GDP)대비 가계신용배율은 사상최고수준으로 삼성경제연구소는 2003년 카드대란 때에 버금가는 위기가 우려된다며 가계부채 조정을 주문한 바 있다. 선진국들은 가계부채 축소를 통해 난국을 수습중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거꾸로 가계부채를 늘리는 기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반기 금융기관 구조조정작업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이 될 가능성이 크다.

국외환경도 한몫 거든다. 세계 주요국들이 글로벌경기침체의 터널을 서서히 벗어나는 터에 미국 달러화 가치속락까지 가세해 석유를 비롯한 국제원자재가격이 다시 꿈틀거리면서 슈퍼인플레와의 세계대전이 임박했다. 작년말 대비 두바이유가격이 2배 이상 인상된 것만으로도 파괴력이 충분한데 수입의존도가 높은 국내실정을 감안할 때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고 한국은 경기회복속도가 가장 빠른 만큼 인플레위험도 매우 크다. 올 4분기부터 인플레가 본격화할 것이란 설이 유력시되고 있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단기부동자금까지 대기중인 것을 떠올리면 모골이 송연하다.

군불을 지폈음에도 윗목은 여전히 냉골이어서 정부가 확장정책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이해되나 인플레심리부터 차단하는 것이 우선이다. 가계대출에 옥석을 가리는 신중함이 요구된다. 또한 가계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80%이고 가계대출의 대부분이 변동금리인데다 출구전략시기가 점차 다가오는 등 대출금리의 추세적 상승마저 배제할 수 없다. 금리가 1%포인트 인상되면 주택담보대출 이자부담이 3조4천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수도권에 대한 총부채상환비율(DTI)규제를 제1 금융권에만 국한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제2 금융권으로 갈아타는 식의 풍선효과 탓이다. 회복속도가 더디더라도 가계부문에 대한 디레버리징과 리스트럭처링을 통해 여유자금이 기업부문으로 흘러가도록 해야 한다. 미국의 금융위기가 가계부채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