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완 (논설위원)
[경인일보=]나랏돈 먼저 가져다 쓰는 사람이 임자라는 속설이 아직도 유효하다. 그 수단도 불법에 의한 유용과 정당성을 가장한 빼먹기 등 광범위해 한 해 새는 국고가 얼마인지 헤아리기 조차 힘들게 하고 있다.

비리의 경우 재산 압류조치 등 좀 강력한 법 규정이 만들어지면 전 보다 덜 할지 따져 봐야 할 일이지만, 벌어진 틈새가 많아서인지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한 예로 가난한 이들에게 쓰여져야 하는 복지예산을 착복, 개인 용도로 써온 담당 공무원의 비리행위가 들통나 전국을 혼란스럽게 한 것이 엊그제다. 공기업에서는 공공을 위한 대가로 엄청난 비용을 가져가고 있다. 억에 가까운 연봉도 모자라, 적자를 내고도 상여금을 나눠쓰는 성과급 잔치 등 신의 직장 행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뭇 직장인과 서민들, 즉 국민적 사기를 떨어뜨리는 대표 직업군으로 지적되고 있지만 바로잡겠다는 정부의 공언에도 크게 바뀐 것이 없어 보인다. 이러한 일련의 부조리 때문인지 나랏돈을 선점하려는 행태의 범위가 넓어져 위기라는 생각마저 들게 하고 있다. 감사원이 최근 발표한 나랏돈 빼먹기 사건은 국민적 사기 저하를 넘어 충격이 되고 있다. 일반 국민들의 생각으로는 깨끗해야 하고 털어서 먼지가 거의(?) 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집단에서 장기간에 걸쳐 벌어진 행태여서다.

시민·사회·문화예술 등 민간단체가 정부에서 지원하는 국고보조금을 3년간 유용하거나 착복한 사건이 터졌다. 건전한 시민단체를 지원, 육성하고 문화예술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취지로 도입된 국고보조금 제도가 부패의 또 다른 통로가 되고 있었다는 사실에 뒤통수를 얻어 맞은 듯 한동안 멍한 상태였을 국민들이 적지 않을 성 싶다.

감사원이 횡령혐의를 잡고 검찰에 수사를 요청, 국민들을 경악케 한 집단은 ▲예술가협회 3개 ▲시민운동단체 2개 ▲영리법인 5개 ▲공연단체 2개 ▲기타 문화예술단체 4개 등 총 16개 단체의 임직원 21명이다.

국내 최대 민간 문화예술단체인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민예총)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이들의 수법은 전문가 뺨치는 수준이라고 한다. 다른 보조금 사업에 집행된 증빙자료 중복 제출, 자신이 속한 단체는 물론 단체 부설연구소를 사칭한 개인연구소를 통한 이중 횡령, 컴퓨터 프로그램 포토숍으로 계좌이체증 위조, 거래처 관계자 은행 공인인증서를 빌린 후 거래 내역 조작 등 진화를 거듭해 왔다.

그동안 믿고 맡긴 해당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 행정안전부, 환경부가 사용처 등 지원금의 행방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 등 전혀 관여하지 않고 있던 3년이 이들에게는 호기였던 것이다. 나랏돈을 눈먼 돈 쯤으로 여겨 호시탐탐 노리는 집단의 끝이 어디인지, 신뢰의 폭이 좁아지면서 문화·복지사회로 가는 길도 멀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투명성을 강조하고 경각심을 주기 위해 일벌백계의 엄한 처벌로 다스리며, 단속을 강화하는 등 자율을 억압하는 후진국형 사회시스템만이 먹혀 들어 몸을 사리는 형국으로는 선진국 진입은 요원하며 국민 삶의 질 또한 나아질 것이 없다.

민간단체 임직원의 부정과 관련, 감사원은 부당하게 집행된 보조금을 환수하기로 했다. 관리감독을 게을리 했거나 방기한 공무원에 대한 문책을 병행하며, 보조금 제도 자체에 허점은 없는지 살펴 제도 개선을 포함한 재발방지책을 마련토록 관련부처에 요구했다. 이것으로는 당장의 대책은 될 수 있어도 근본적인 방지는 어려울 듯 하다. 사건이 터지면 으레 나오는 대책으로는 되풀이 되는 부정행위를 막지 못해 늘 그타령이라는 건 경험이 말해주고 있다.

교육과 사회정의, 자정활동에 그 답이 있을 듯하다. 조기·연계교육 등 교육관련 장기계획에 법을 어기면 상응하는 처벌은 피할 수 없다는 사회적 공념도 반드시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청결해지는 자정분위기를 만들어 나가는 국민적 행동이다. 책임은 국가뿐 아니라 국민에게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