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원식 약력 ▶인천 태생 ▶서울대 국문과 졸 ▶현 인하대 국문과 교수 ▶창작과 비평 주간, 민족문학사학회 공동대표 역임
[경인일보=]경인일보 독자 여러분, 드디어 21세기 첫 10년의 아침입니다. Y2K 문제로 21세기의 첫 아침을 약간의 공포속에서 맞이한 기억이 새로운데 어느덧 새 세기도 벌써 10분의1이 지나갑니다. 그럼에도 아직 21세기를 20세기와 가를 결정적 계기가 뚜렷하진 않습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냉전시대는 끝났지만 새 시대는 아직 열리지 않은 연옥의 시간을 우리는 목하(目下) 통과중입니다. 과연 21세기의 향방을 고지(告知)할 기틀은 어떤 모습으로 도래할까요?

일극으로 군림하던 미국의 시대가 서서히 황혼에 물들고 있습니다. 20세기에는 유럽의 변방, 미국이 19세기의 영국을 이어받았듯이, 세계의 중심은 부단히 움직입니다. 그렇다면 21세기의 중추는 어디일까? '대서양 미국'보다 '태평양 미국'을 중시하는 흑인대통령 오바마가 출현한 미국을 보거나,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줄기차게 추구한 일본이 최근 아시아로 U턴하는 형세를 보거나, 그리고 무엇보다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급격한 상승을 보건대, 오랫동안 구미의 변방으로 굴종한 동아시아가 그 곳일 가능성이 높아지는 형편입니다.

이 가능성을 현실로 불러오기 위해서는 동아시아, 특히 동북아시아의 평화가 종요롭습니다. 미·중·일·러 등 대국들이 각축하는 동북아에서 한반도는 분쟁축의 하나입니다. 남 탓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평화를 실천하는 것이 '지루한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그럼에도 한반도의 남과 북은 차치하고, 한국안에서도 정당한데도 복종을 거부하는 일보다 정당하지 않으면서 복종을 요구하는 일들로 소란했던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갈등없는 사회는 죽은 사회입니다. 그러나 갈등이 합리적 토론을 통해 해결되지 않음으로써 음습한 뒷공론만 불길한 덩굴처럼 번창하는 사회 역시 죽은 사회입니다.

'조간신문을 읽는 것은 세상을 만나는 현실주의자들의 아침기도'라고 헤겔은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신문은 중지를 모아 문제를 해결하는 공공적 토론의 광장이요, 지도자와 시민이 토론을 통해 상호 진화를 시험하는 민주와 공화의 마당입니다. 동아시아로 다가오는 세계사의 기운을 제대로 맞이하기 위해서, 한반도의 중추에 자리한 경인지역 시민들의 분발이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이때, 창간 50주년을 맞는 경인일보가 지방과 나라를 함께 살리는 양명한 토론의 허브로 거듭나기를 기원하는 마음 그지 없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2010년 1월1일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임직원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