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진영 (인하대 교수·객원논설위원)
[경인일보=]2010년 세계의 화두 중 하나가 '중국'이라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난 2년간 글로벌 경제위기에서도 중국은 고속성장을 지속하였고, 세계경제에서 그 위치를 더욱 공고히 하였다. 지난해 중국은 드디어 독일을 제치고 세계 제1위의 수출국이 되었다. 물론 지난 몇 년간 역시 세계 1위인 1조9천억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외환보유고를 바탕으로 중국은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점차 목소리를 높여왔다. 지난 12월 열린 코펜하겐 기후변화회의는 결국 미국과 중국의 입장 차이로 인해 실질적 합의가 안 되었다고 할 정도로, 중국의 세계적 역할이 강조된 회의였다.

2006년 미국 경제학자 도널드 스트라즈하임이 처음 사용하였다는 G2라는 용어는 지금 세계 사람들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미국과 중국이 세계를 공동으로 통치한다는 차이메리카(Chimerica)라는 용어도 점차 힘을 얻고 있다. 지난해 11월 오바마 미국대통령의 중국 방문 당시, 현안에 대해 아무런 요구도 못한 채 오히려 중국과의 전면적 협력을 요청했다는 보도는 중국의 위상을 더욱 높여보이게 하였다. 미국과 EU 등 서구 국가들이 위구르나 티벳의 독립운동에 대한 중국의 탄압에 대해 그 비난의 어조를 급격하게 낮추기 시작한 것도 최근 몇 년간 나타나기 시작한 현상이다. 과연 21세기는 지난 200여년의 '치욕의 역사'를 뒤로 하고, 다시금 중화제국 질서가 부활하는 세기가 될 것인가? 중국과 붙어있고(물론 북한이 가로막고 있다), 중국이 제1의 수출국이자, 제1의 투자국이며, 중국에 유학생을 가장 많이 보내고, 인적교류가 연 550만명에 이르며, 국내선보다 많은 항공편이 중국으로 매일 운항되는 한국. '중국'이라는 용어와 매일 접해야만 하고, 앞으로 더욱 접할 한국에서 '중국'에 대한 생각은 그렇다면 어떠할까.

대학에서 국제정치와 중국외교를 가르치는 필자는 지난 20여년간 대학생들과 일반인들의 중국에 대한 인식을 바라보며 관찰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뒷북치기'식의 중국에 대한 인식과 '찰나적'인 태도가 한국 사회에 만연했다고 항상 느꼈다면 과장일까? 한·중 수교를 하던 1992년, 중국의 사회체제에 대한 이해는 물론 중국어를 하는 한국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가난한 중국에 대해 업신여기는 태도는 과거 중화주의 질서에 살던 사람들의 앙갚음이라고 할 정도로 매서웠다. 10년이 지나, 중국이 20여년 개혁개방의 성과를 마무리 짓고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던 2001년에도 한국 사람들의 태도는 그리 변하지 않았다. 중국어 학습에 대한 유행은 시작되었으나, 중국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나 전문가의 양성은 미루어졌다. 중국의 새로운 외교정책이 이미 실행단계에 들어갔던 당시였으나, 3년 후 고구려사 관련 동북공정문제가 이슈화될 때까지 한국 사회는 무지하였다. 반면 탈북자 문제와 북한 핵문제와 관련하여 갑자기(?)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역할이 부각되자 한국 사람들은 당황하였다. 중국의 힘이 이제야 옆에서 느껴지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조잡하고 싼 제품, 그래서 쉽게 망가지고 유해한 상품을 만든다고 생각한 중국인데, 이제는 더욱 밀접해진 경제관계로 중국과 더불어 살아야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어떤 방식으로 살아야 할지 갈피를 못잡았다. 일부는 한국이 중국에 잘난척하는 짧은 시간은 이미 지났다고 하면서 비아냥거렸다. 그러나 그 말이 허공에서 채 사라지기도 전에 중국은 우리는 물론 세계 앞에 거대한 실체로 나타났다.

정말 갑자기 그런 걸까? 우리만 몰랐던 것은 아닐까? 중국이 기침하면 한국이 감기 걸릴 정도로 밀접한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중국을 이해하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상대에 대해 무지하면 힘의 논리에 의해 좌우되기 싶다. 다시금 예전의 사대주의적인 관계로 회귀하지 않으려면 중국에 대한 이해가 정책결정자들은 물론이고, 일반인 모두에게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의 자라나는 아이들이 활동할 때 바람직한 한·중관계를 위해서도, 지금 미래를 내다보는 차분한 관계정립이 필요하다. 중국의 부상에 대해 호들갑을 떨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