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위 62도 지점부터 하나 둘씩 나타나기 시작한 유빙과 빙산이 남위 65~66도 지점을 지나면서 자주 관찰되고 있다. 사진은 마치 엄마 손을 잡고 소풍을 나선 아이처럼 나란히 다정하게 떠내려가는 한쌍의 '모자(母子)'빙산.

 

[경인일보=남극해 남위 70도 해역, 아라온 선상/송현수기자(부산일보)]21일 오전(이하 현지시간) 아라온호가 남위 70도 해역으로 진입하면서 1차 목표 지점인 케이프 벅스(남위 74도 45분, 서경 136도 48분)를 향해 남극해를 순항중이다. 아라온호 선상의 시차는 국내보다 4시간 빠르게 설정됐다. 남극해를 순항하고 있는 아라온 선상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아라온 사람들의 24시를 들여다보았다.

■ 남위 60도 지점부터 인터넷·통신 두절…기자단·승객들 '발 동동'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를 기점으로 아라온호에서의 선상생활이 22일로 열흘째를 맞는다. 선상생활에서 최대 애로 사항은 통신과 인터넷 사정이 너무 열악하다는 점이다.

아라온호가 남극해(남극권)의 기점인 '남위 60도' 지점에 막 진입한 지난 18일 자정께부터 사실상 인터넷 접속이 24시간 불가능한 상태가 연일 지속되고 있다. 19일 오후에 한동안 인터넷이 연결되기도 했으나 이도 잠시. 21일 현재까지 장시간 접속이 불가한 상태.

적도 상공에 떠있는 인공위성이 아라온호의 이동항로 반경을 제대로 커버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라는 게 아라온 관계자의 설명이다.

선상에서 인터넷 전화로 가족들과 안부를 주고받던 탑승자들에게는 청천벽력이자 그야말로 맥 빠지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아쉬운대로 선원들이 주로 이용하는 인말샛 카드를 구입해 조타실에서 음성통화로 안부를 전하는 열성파도 있다. 하지만, 카드 가격이 만만치 않다. 또, 이 카드마저 남위 70도 이상에서는 접속 여부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남극 항해기간 생생한 소식을 전달하겠다고 약속한 취재기자들로서는 낭패이다. 불가피하게 케이프 벅스와 테라노바베이를 대상으로 한 정밀조사를 마치고 귀항하는 2월12일께까지는 20일 이상 남극 소식을 독자들에게 배달하지 못할 수도 있어 걱정스럽다.

▲ 헬기에서 촬영한 러시아 쇄빙선 아카데믹 페도로프호의 모습. /(주)디엠지와일드 제공

 

■ '남극의 여인' 쓰러지다!

'남극의 여인'도 배멀미에는 속수무책!

이번 극지 탐험에는 겁없는 커리어우먼 3명이 동승했다. 극지연구소 김지희 선임연구원, 문난경 환경정책평가연구원 책임연구원, KBS 이은정 과학전문기자가 화제의 주인공들.

한상호 닥터를 앞세우고 왕진을 핑계 삼아 '금남의 집'에 쳐들어갔다. 소문대로 김지희 연구원은 심한 배멀미때문에 침대를 벗삼아 지낸 지 오래였다. 알고보니 김 연구원은 남극 세종기지를 7차례나 다녀왔고 남극 대륙기지도 이번이 두 번째란다. 룸메이트인 문난경 연구원 역시 배멀미로 심한 고생을 하고 있었다. 이들 두 여인은 배멀미로 고생중인 와중에도 특유의 어록을 남기는 여유를 보여 눈길을 끌었다.

"사는 것이 문제이지, 자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김지희 연구원), "아이 가질 때도 입덧 한번 안했는데…."(문난경 연구원)

다행히 20일부터는 파고가 평균 2m 안팎으로 안정돼 배멀미로 고생해온 선상 가족들이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 머리에 타박상을 입은 환자를 치료중인 아라온호의 유일한 닥터 한상호 외과전문의.

 


■ '행운의 사나이, 세종기지 월동대원' 남극행 사연도 가지가지

아라온호의 유일한 의료진인 한상호 닥터는 경북 경주에서 태어나 돌 무렵부터 부산에서 자란 부산 토박이 외과 전문의사다. 부산 한서병원에서 근무하다 남극에 꼭 한번 가고 싶다는 일념으로 의료진 공모에 응해 행운을 잡은 케이스다. 한 닥터는 "일상에서 벗어나 남극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고 있다. 기회만 되면 북극도 가보고 싶다"며 "내 안에 내재된 본능들이 슬슬 꿈틀댄다. 어떤 기운들이 슬금슬금 기어 나오는 것 같아 걱정이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호텔 주방장 출신인 이상범 조리장은 금강산 관광 유람선인 금강호 설봉호 등에서 5년여간 근무했다. 현대아산이 운영하는 해금강호텔에서도 근무한 이색 경력자로, 바다와의 인연이 질기다.

신학을 공부중인 이상헌씨는 아라온호 명칭(선명) 공모 포상자의 신분으로 남극행 티켓을 거머쥔 행운의 사나이다. 손호웅 교수가 이끄는 배재대 팀에는 박은호 박병화 원준열씨가 연구조교로 동참했다. 충남대 최재용 교수도 젊은 조교 한 명을 대동했다. 아라온호 주방, 기관실, 조타실 등에서 근무하는 3명은 남극 세종기지에서 1년여 이상을 지낸 세종기지 월동대원 출신이다.

▲ 아라온호 조타실에서 근무중인 김대영 2등 항해사.

 

※ 페도로프호, 경험·노하우 전수… 자력으로 얼음깨고 항해 스타트

국내 첫 쇄빙연구선인 아라온호가 22일(현지시간) 남극해(남극권)내 '남위 70도 50분, 서경 132도 24분' 주변 해역에서 쇄빙항해·항법기술을 자문해줄 러시아 쇄빙선 아카데믹 페도로프(Akademik Fedorov)호와 합류했다.

앞서 아라온호는 21일 오전 페도로프호와의 랑데부 지점에 선착해 꼬박 하루 가까이 대기했다.

이번 랑데부는 페도로프호가 러시아의 레닌그라드스카야(Leningradskaya)기지에 보급품을 전달하고 나서 자국의 폐기지인 케이프 벅스(Cape Burks) 인근 루스카야(Ruskaya) 기지에 정기 장비점검차 가는 길에 이뤄진 것으로, 현지 기상 악화로 예정보다 5일 정도 순연된 것이다.

랑데부 직후 우리 측은 아라온호에 탑재된 임차 헬기 1대를 띄워 러시아측에서 얼음정보를 분석·제공하는 아이스 네비게이터(Ice Navigator) 1명을 전격 배치받았다. 쇄빙 경험이 전무한 우리로서는 페도로프호와 동행 항해를 통해 쇄빙능력시험 등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받는 자리인 셈이다.

아라온호의 첫 목표지는 서남극(남위 74도 45분, 서경 136도 48분)에 위치한 케이프 벅스. 남극 킹조지 섬의 세종기지에 이어 남극 제2기지(남극대륙기지) 후보지로 유력시되는 곳이다.

아라온호는 페도로프호와 3일 정도 동행 항해해 25일께 케이프 벅스에 도착할 예정이다. 케이프 벅스에서는 약 10일간 대륙기지 후보지로서의 적합성 여부를 판단하는 정밀조사와 아울러 본격적인 쇄빙능력시험이 이뤄진다. 페도로프호는 케이프 벅스에 이틀 정도만 머물고 루스카야 기지로 먼저 출발할 예정이다. 따라서 아라온호는 케이프 벅스에서 빠져나와 테라노바베이로 이동하는 동안 자력으로 얼음을 깨며 항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