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9 혁명의 정치적 소용돌이를 딛고 1960년 8월15일 인천시 사동에서 인천신문이라는 이름으로 경인일보가 창간됐다. 위국정론, 지역발전, 문화창달을 사시(社是)로 하여 경인지역 언론의 새 지평을 연 것이다.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숨가빴던 반 세기를 지나오면서 새로운 100년을 향해 그 힘찬 발걸음을 내딛게 된다. 50년 격동의 역사 만큼이나 경인일보의 역사도 수많은 변화가 있었다. 창간 8주년을 맞은 1969년 8월15일 경기연합일보로 제호를 변경하고, 이듬해 경기도청의 수원 이전에 맞춰 본사 사옥을 수원시 교동으로 옮겼다. 1970년에는 연합신문으로 또 제호가 바뀐다.
당시 수원에서 발간되던 경인일보 전신인 연합신문과 인천에서 발간되던 경기매일신문, 경기일보 등 3개 신문이 존재했으나 이를 통합, 1973년 9월 1일 경기신문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탄생하게 된다. 이후 1981년 7월1일 인천시가 직할시로 승격됨에 따라 1982년 3월1일 경인일보로 개칭해 오늘에 이르게 된다. 이후 1989년 10월 인계동 신축 사옥으로 이전, 동수원 시대를 열었다.
지난해 2월11일에는 지령 1만5천호를 발행, 우리나라 신문역사상 손가락에 꼽을 정도의 전통있는 언론으로 자리하게 됐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수도권의 중심언론으로서 지난 50년 동안 한결같이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와 비판의식 그리고 냉철한 사회감시를 통해 언론의 사명을 다해 온 것은 모두가 경인일보를 아껴준 독자와 광고주 여러분들의 덕택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큰눈! 큰생각! 큰신문!'을 표방하는 경인일보는 지역사회 발전을 선도하고, 지역의 이익을 대변하며 통일시대를 대비해 대한민국을 선진 일류 국가로 만드는데 역할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듯이 이제 경인일보의 50년과 경인지역 언론의 50년사도 정리하고자 한다. 꿋꿋하게 반 세기의 세월을 지켜오는 동안 격동의 시절을 겪으면서 더러 실수와 흠결도 있었다. 편파와 왜곡, 굴종의 시기도 없지 않았다. 모든 것을 거짓과 숨김 없이 담아내고 새로운 도약의 100년을 다짐하고자 한다. 특히 올해는 경술국치 100주년, 6·25전쟁 60주년 그리고 4·19혁명 50주년이다. 광복군 창군 7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역사적인 한 해의 시작과 더불어 선열들이 나라를 위해 던진 소중한 목숨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또 치욕의 역사들도 품어안을 것이다.
독자들을 위해서는 단 하나의 작은 사건이나 소문이라도 놓치지 않는 경인일보. 1994년 굴업도 핵폐기장 기사로부터 시작된 기자상의 행진은 지금까지 무려 50차례에 걸쳐 150명이 넘는 기자들이 한국기자협회와 신문협회가 시상하는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했을 정도다. 1995년 인천북구청 세무비리 취재보도가 한국기자상을 받은 이래 3년 연속을 포함해 모두 7차례나 한국기자상을 휩쓸었다. 기자상 제조기 신문사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 말 경인일보 홈페이지 접속 건수로는 지방 일간지 가운데 1위로 성장하기도 했다.
앞으로도 경인일보는 50년 역사에 걸맞게 누구도 흉내내지 못하는 한국언론사의 금자탑을 세워갈 것이다. 그 등 뒤에는 독자 여러분들의 성원이 자리함은 물론이다. 뛰어 온 50년을 뒤로 하고 이젠 100년을 향해 날아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