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직사회의 거짓행위가 빚은 도덕적 해이가 도를 넘어선 느낌이다. 금융감독원이 설립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한 터에 이번에는 강원도 화천군에서 구제역방역 관련 대리근무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작년 말부터 곳곳에 방역초소를 설치하고 공무원 1인 2교대, 주민 3명 3교대로 조를 편성했는데 야간근무 당번인 일부 공무원들이 일용직을 대신 투입하고 일당 8만원의 야근수당을 챙겼던 것이다. 화천군에서만 15억원이 부당 지출됐는데 국민들은 "화천뿐이겠는가"라는 반응이다. 지난 겨울 기록적인 혹한만큼이나 구제역이 전국을 초토화시켰으니 말이다. 주목되는 것은 공직자들의 세금도둑질이 구제역에만 국한된 사실이 아니란 점이다. 천재지변시 비상대기가 일상화한 터에 공무원들의 일상근무에서도 부당한 초과근무사례들이 비일비재한 탓이다.
공직자들의 양심불량행위는 이뿐 아니다. 지난 3월에는 인천경찰청 소속 한 경찰관이 특진을 위해 허위공적서를 제출했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최근 경기도교육청의 자체감사에서는 부서회식비 마련을 위해 가짜로 출장비를 수령하고 교원들의 경력이나 근무성적을 조작한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정도는 애교에 불과하다. 뒷돈 제공을 담보로 유흥업소들의 일탈을 외면하는 투캅스(?)들이 근절되지 않는 가운데 스폰서 판검사들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권(利權)과 밀접한 부처 공무원 및 정치인들이 유관기업들의 법인카드를 사용하는 관행은 비밀도 아니다. 공기업들의 부실경영도 이와 무관치 않다.
법을 집행하는 공직사회의 반칙과 비리가 끊이지 않는 형국이니 민간부문은 오죽할까. 과도할 정도의 배당을 통해 기업을 빈사지경에 이르게 함은 물론 대주주들의 불법비자금 조성사례들도 끊이지 않고 있다. 물타기 증자, 주가조작 등으로 개미투자자들을 울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상속세를 한 푼도 내지 않고 그룹을 통째로 자손들에게 상속해 주는 사례들은 일상화됐다. 감독이 소홀한 금융기관들의 서민예금자 등치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부산저축은행 임직원 20여명은 무려 120개의 서류상의 회사를 설립하고 친인척이나 지인들을 바지사장으로 앉힌 뒤 월급명목으로 6년간 수백억원을 빼돌렸단다.
오너들이 관련된 기업범죄는 속성상 단독범행이 불가능해 임직원들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요즘에는 기업들의 인재관도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 지난 4월 삼성화재가 올해 승진한 신임과장 184명에게 훌륭한 간부가 되기 위한 자질을 묻는 설문조사에서 '전략수립 및 실행력'에 44%가 지지한 반면에 '근면성실한 태도'는 8%에 불과했다. 유연한 사고와 행동이 우선시됨을 상징한다. 마치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이다. 그런 때문인지 우리 사회는 한국전쟁이후 최대의 국난(國難)으로 치부되던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도 극복했다. 침체의 늪에 빠진 일본인들이 부러워할 만도 했다.
그러나 결과만을 중시하는 풍조는 수많은 서민들의 상실감과 양극화를 초래했다. 정직과 성심으로 일관한 장기근속자들이 무능력한 희귀동물(?)이 된지 오래고 '티끌모아 태산'은 촌스런 우화쯤으로 치부되고 말았다. 심지어 초중등 학생들간에 모범상은 '바보상'으로 치부되는 형편이다. 정부는 대형 비리가 발생할 때마다 새로운 근절장치 마련을 강구하고 있으나 그럴수록 규제는 더욱 강화돼 자본주의경제 특유의 활력이 점점 줄어든다. 절대다수 선량한 서민들의 영락이 초래한 사회적 비용의 점증도 간과할 수 없는 형편이다. '착한 자본주의'를 강조하는 세계적 추세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물신주의에 매몰된 부정직한 행위들이 우리사회 전체를 위기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정직과 성실 그리고 자율로 무장한 이를 최고의 인재로 치부하는 도요타자동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