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대교수·객원논설위원 이 한 구
부산저축은행 사태가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사건이 터진 지 6개월이 지났으나 마무리는커녕 정치적 사건으로 비화되었으니 말이다. '카더라'식 루머가 항간에 떠도는 와중에 국정조사 증인 채택을 둘러싸고 청와대는 물론 과거권력과 미래권력 핵심실세들의 명단까지 들먹이는 탓이다.

피해규모가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데다 범죄연루자들이 금융감독원, 국세청, 감사원, 법조계, 청와대, 언론인, 국회의원 등 전방위적이어서 충격이 더했다. 감독기관이 눈감아주고 정치권이 뒤를 봐주었으니 은행예금을 통째로 가로채는 것쯤은 '땅 짚고 헤엄치기'격이었을 것이다. 덕분에 부산 자갈치 아줌마들만 날벼락을 맞았다.

한국에는 3대 불가사의한 조직이 있다. 작금 여론의 표적대상으로 부상한 해병대 예비역모임인 해병대전우회와 호남향우회, 그리고 고려대교우회 등이다. 이 조직들의 연(緣)줄이 유난히 굵은(?) 탓인데 주목할 것은 대한민국이 '연의 사회'란 사실이다. 탯줄이 혈연사회를 지탱해주는 근간이듯이 고향, 출신학교, 특수집단 등은 사회적 연결고리이자 입신출세의 든든한 밧줄이며 '한강의 기적'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었다.

아무리 생면부지의 인사라도 서너 사람만 거치면 그 사람의 족보까지 캘 수 있는 곳이 한국이다. 부패커넥션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이다. 부산저축은행 대주주 및 경영진은 지연, 학연 등을 이용해서 서민예금자들을 등친 것으로 확인되었다.

부패는 정보의 독점과 왜곡, 은폐와 밀접한 연관이 있어 불식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용인할 수도 없다. 뇌물을 매개로 한 부패와 시장경제 및 자원배분은 역(逆)의 상관관계에 있어 독과점과 부(富)의 편재, 고비용, 기업가정신 약화, 외국자본 유입저해 등 국가경쟁력을 훼손할 뿐 아니라 국제무역에서도 불리하게 작용한다. 부정부패는 전 세계 기업활동비를 10%가량 증가시키며 개발도상국 조달계약 규모의 25%에 상당하는 비용을 추가로 발생시킨다는 연구결과가 이를 입증한다.

부패인식지수가 세계 최고인 핀란드에서는 공적(公的) 정보에 대한 일반인의 접근을 대대적으로 허용해서 정보의 비대칭으로 인한 비리소지를 원천 차단했으며 싱가포르가 부패에 대한 무관용(zero tolerance)정책을 일관해서 세계유수의 '청정국' 브랜드를 확보한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최근 들어 영국은 세계적으로 가장 강도 높은 뇌물규제법(Bribery Act)을 실시중이며 중국도 부패 방지에 공을 들이고 있다. 부패척결 없이는 선진국 진입이 불가능한 탓이다.

작금 정부는 공정사회 운운하며 부패와의 전쟁을 준비하는 인상이다. 이 정부는 권력형 비리, 공직자비리, 친인척비리, 토착비리 등을 척결하겠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공언했으나 가시적 성과는커녕 국민들의 상실감만 증폭되는 때문이다. 내년 선거의 향배마저 가늠되지 않는 상황이어서 여당 내에서조차 반(反)부패 목소리들이 점차 커지는 실정이다.

정부가 대학생들의 반값 등록금 시위를 계기로 사학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에 착수한 터에 임태희 대통령실장은 대기업들의 변칙 MRO(소모성물품 구매대행) 자급행위의 근절을 공언했다. 또한 지도층을 중심으로 한 병역비리를 점검하고 탈세자에 대한 조사를 거론했다. 부유층의 재산 해외도피 조사와 근로자 임금체불 및 불공정한 임금문제까지 바로잡아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법무부장관, 검찰총장, 민정수석비서관 등 핵심 사정라인에 대한 교체작업을 완료한 상황이다.

미국, EU와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계기로 국제적인 투명성 제고압력은 설상가상이다. 그러나 집권 하반기의 사정(司正)작업이 성공을 거둔 전례(前例)가 없어 기대는 금물이다. 기업친화형 정부의 태생적 한계도 기대치를 낮추는 요인이다. 조기 레임덕 또한 걸림돌이어서 자칫 '무늬만 사정'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너서클 내의 유력한 범죄혐의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구태의연한 '유전무죄'식 사정으로 마무리될 수도 있어 보인다. 어떤 식으로 사정할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