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는 요즘 전쟁터를 방불한다. 졸업생들의 취업률 높이기에 비상이 걸린 것이다. 캠퍼스의 낭만을 만끽하는 5월 축제의 이면에 취업률이라는 슬픈 자화상이 공존하며 상아탑을 짓눌렀다. 교육과학기술부의 대학별 취업률 통계조사가 이달 말일이 기준이기 때문이다.
취업률은 8개의 평가 지표 가운데 재학생 충원율(30%)과 더불어 부실대학을 가리는 지표의 가중치 20%를 차지할 정도로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이를 기준으로 부실대학이 가려지고, 학자금 대출 제한 등 정부 지원에서도 제외된다. 각 대학들이 마음을 졸이는 이유다.
물론 비싼 등록금을 내고 대학을 졸업했으면 좋은 직장에 취업하는 것이 학부모와 학생들의 당연한 바람이다. 대학이 학문 연구의 전당인지, 취업을 위한 학원에 불과한지에 대한 물음표로 혼란을 겪기도 하지만 그래도 대외적으로 발표되는 공식적인 평가이기에 사활을 건다. 그러나 교육과학기술부가 산정하는 취업률 통계가 합리적인 것인지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졸업생이 3천명 이상이냐, 미만이냐, 대학 소재지가 수도권이냐, 지방이냐 만을 따져 일률적인 잣대로 평가한다. 학교와 학과마다 특성과 여건이 천차만별임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취업률로 대학을 한 줄로 세운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에 대해서는 심각히 고민해야 한다. 평가방법상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수능과 내신 성적순에 의해 대학이 서열화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또 통계의 정확성과 형평성을 위해 2010년부터 직장건강보험가입자만을 취업자로 인정한다. 이 때문에 대학의 취업률이 많이 떨어졌다. 대학정보 공시사이트인 '대학알리미'에서 공개된 지난해 취업률(졸업생 3천명 이상 대형 학교 기준)을 보면 서울대가 59.8%로 7위에 그쳤다. 나머지 이른바 명문이라는 1~6위의 대학도 60%대다. 명문 대학들도 취업률이 50~60%대라고 하면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다. 예술관련 대학은 취업률이 10∼20%대인 곳이 허다하다.
이 때문에 지난해 9월 추계예술대학교 교수진 전원이 "학생들을 부실학생으로 만들어 미안하다"며 보직 사퇴를 결의하기도 했다. 예술가나 작가, 프리랜서가 되어 나름대로 행복한 꿈을 펼치고 있는 졸업생들에게 직장의료보험이 없다는 이유로 미취업자로 분류된 때문이다. 각종 고시를 준비하고 대학원 진학을 기다리는 우수한 인재들도 이 기준에 의하면 실업자다. 이같이 합리적이라 할 수 없는 기준으로 발표된 취업률을 학부모와 수험생들이 맹신하는 것도 문제다.
취업률이 비교적 낮은 인문대학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교사나 교수가 된다거나 연구기관에 취업한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도 어렵다. 상대적으로 상과대나 공대보다 취업에서 불리하다. 작가의 길을 걷는다든지, 프리랜서로 활동해도 직장의료보험이 없다는 이유로 미취업자가 된다.
그래서 일부 인문계 대학은 특정학과를 없애기도 하고 학과를 취업률 제고를 위한 방향으로 개편하려는 위험한 발상을 하기도 한다. 이러다가는 최근 일고있는 인문학의 열기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가 올지도 모른다. 학생들을 상담하다 보면 때로는 자발적 실업자들도 있다. 직장을 선택한다는 것은 인생에서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일일 수 있다. 그래서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아무 데나 가라고 할 수도 없다. 이런 경우 취업률이 낮다고 해도 속수무책이다.
그러면 왜 이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을까. 1996년 시행한 대학설립준칙주의를 지목한다. 인가 체제에서 일정 기준만 충족하면 대학 설립을 허용했다. 이 제도로 지금까지 무려 94개 대학이 늘었다.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대학들이 우후죽순처럼 난립해 대학 진학률을 세계 최고인 90% 가까이 끌어올렸다. 대학교육에도 인플레가 등장한 것이다. 무분별하게 대학을 설립해주고 대학 구조조정이 이슈로 등장하자 학생충원율과 취업률의 칼날을 들이댄 것이다. 취업률 하락은 대학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에도 책임이 있다. 경제를 살리고 제대로 된 일자리를 만들어주지 않는 한 천편일률적인 대학의 취업률 조사는 큰 의미가 없다.
대학취업률 통계의 허와 실
일률적 잣대로 대학 서열화 초래
대학 난립 허용한 정부에도 책임
입력 2012-05-30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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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3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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