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법안의 제정을 위해 2004년 이래 전국 문화계가 지역별 토론회를 개최하고 쟁점사항을 조율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왔던 지역문화계의 숙원이었다. 17대 국회에 이어 18대 국회에서도 제정이 추진되었으나 문방위 법안심사소위에 회부된 상태에서 결국 자동폐기되고 만 '비운의' 법안이다.
지역문화진흥법을 제정하기 위한 움직임은 2001년 '지역문화의 해' 지정을 계기로 시작되었으며, 2003년 12월 문화관광부에서 지방분권 TF를 조직 가동하면서 본격화되었다. 이후 문화진흥법 제정과 관련된 논의는 부산을 필두로 전주, 대전, 인천 등에서 차례로 개최되어 지역의 의견을 수렴하고 법안의 필요성과 의미를 공유하는 폭을 넓혔다. 그리고 2006년 5월 10일 이광철 의원을 비롯한 31명의 의원이 지역문화진흥법안을 의원입법 형태로 추진한 바 있으며, 2011년 5월 다시 발의되었으나, 2012년 들어서 문방위 계류 중 자동폐기되고 만 것이다.
이제 지역문화진흥법이 제정되지 못하고 자동폐기되고 말았던 요인이 무엇인지를 점검하고 이후의 과제를 고민할 시점이다. 우선 정치지형을 보면 참여정부가 의지를 가지고 역점적으로 추진했던 지역균형발전 정책이 형해(形骸)만 남기고 실종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현 정부 들어서 지역문화정책은 후퇴했거나 실종되었다는 지적이 높다.
고사 직전의 지역문화를 살려내기 위한 기본적 토양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데 오히려 도시와 지역의 경쟁을 유발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정책의 기조를 바꾸지 않으면 지역간 문화 불균등은 더욱 심화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또 다른 원인으로는 지역과 문화계의 법안 추진 동력의 상실을 들 수 있다. 진흥법이 국회에 제출되면 제정되는 것으로 낙관하고 정부와 국회만 바라보면서 법안 제안 과정의 열기를 유지하지 못한 것이다. 국회에서 지역문화발전법은 의원들의 지역구 사정에 따라 온도차가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염두에 뒀어야 했다. 이 점은 의원들뿐 아니라 지역문화인들도 참고해야 할 대목이다.
애초에 지역문화진흥법 제정은 침체일로를 걷고 있는 지방문화의 현실을 감안할 때 총론에서는 이견이 제기되지 않으리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법안 제정추진위 구성 이후 토론을 거듭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단체간의 이견은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법안 제정 과정에서 이해 당사자들간의 견해차로 인해 진통을 겪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지역문화진흥법안의 경우 뚜렷한 쟁점 없이 논의가 공전되었다는 점이다. 가장 주된 요인은 법 제정 취지에 대한 우리 문화계와 예술단체 진영내의 반목과 불신이 암암리에 작용을 한 것으로 보인다.
지역문화진흥법은 지역문화의 기초환경 개선을 목표로 추진된 것으로 예술적 경향이나 개별 단체의 이해로 접근한 사안이 아니었음에도 추진 주체와 그 결과에 대한 선입관이 암암리에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이 법이 지방자치단체의 권한과 자율성을 약화하고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었는데, 이는 지방문화예술이 관료주의적 문화행정으로 타율화되고 있는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문제제기라 할 수 있다.
서울은 문화 인력과 자원, 시설이 집중되어 있어 마치 한국문화를 대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자원과 인력은 대부분 지방에서 '징발'한 것이다. 수도의 문화가 더욱 풍성해질수록 그 뿌리에 해당하는 지방 문화는 고사되는 모순을 해결하고 한국문화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19대 국회가 지역간 문화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최소장치인 지역문화진흥법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조속히 법 제정에 나서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