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한구 / 수원대교수·객원논설위원
금년 정치권의 최대화두는 경제민주화이다. 그러나 의미가 모호해 뜻풀이를 둘러싼 해프닝도 빈발하고 있다.

일전 새누리당의 이한구 원내대표가 "기회의 공정, 공정한 부담, 공정한 거래, 불공정경쟁방지, 불균형 해소를 의미한다"고 했다가 김종인 선대위원장으로부터 "시장경제발전과정에 대한 이해가 굉장히 부족한 자"로 면박을 당한 것이 단적인 사례이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장도 "경제민주화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고 한마디 거들었다. 자칫 경제적 평등으로도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시프 스티글리츠까지 헷갈려할 정도이다.

경제민주주의의 요체는 사회경제적 측면에서의 기회의 평등이나 문제가 많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더 이상 용납되지 않으며 가난의 대물림 탓에 자칫 빈곤층의 생존권까지 위협을 받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정치가 경제에 개입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현대국가들의 의무이기도 하다. 왜곡된 분배구조를 바로잡아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민주주의를 사회민주주의라고도 한다.

제18대 대통령선거운동 양상은 종래와는 사뭇 다르다.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까지 이구동성으로 경제민주화를 들고 나온 것이다. 재벌을 공격대상으로 삼은 것도 똑같다. 재벌 때리기의 강도(强度) 내지는 '짝퉁' 시비만 다를 뿐이다.

서민들 및 중산층의 생활이 어려워진 반면에 재벌을 포함한 대기업들이 승승장구한 것이 직접적인 배경이다. OECD 회원국들의 빈부격차는 상위 10% 부자의 소득이 하위 10%의 소득보다 9배이다. 그러나 한국은 10배로 평균보다 더 나빠진 것이다. 지난 4년간 15대 재벌의 계열사수는 427개에서 778개로 64%나 증가했으며 영업이익은 무려 73%가량 늘었다. 재벌들이 주로 동네슈퍼나 빵집, 통닭집, 꽃집 등 골목시장을 접수한 결과이다. 그럼에도 고용률은 제자리이며 실업률은 오히려 증가했다. 청년실업률 점증은 설상가상이다. 민생경제가 날로 힘들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이명박정부 4년 동안에 더 심해졌다는 주장도 한몫 거들었다. 오죽했으면 새누리당의 김태호 경선후보가 '탱크로 골목시장을 밀어붙였다'고 격하게 표현했겠는가. 경제기사도정신 운운은 딴 나라의 얘기일 뿐이다.

유력주자인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마저 이례적으로 재벌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대기업의 일감몰아주기 및 부당내부거래를 근절하며 신규 상호출자를 불허하고 무분별한 중소기업 진출도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중소도시에의 대형유통점 입점 불허와 불공정한 하도급관행도 바로잡겠다고 약속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신설하고 큰 기업일수록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도 했다.

임태희 후보는 한술 더 뜬다. 대기업의 불공정거래를 '경제살인죄'로 간주해서 엄히 처벌하고 신규는 물론 과거의 순환출자까지 해소하겠다고 언급한 것이다. 연기금 주주권 행사를 통한 재벌견제강화도 곁들였다.

통합진보당은 아예 재벌해체를 들고 나왔다. 민주통합당은 이참에 재벌을 바로잡겠다며 각오가 대단하다. 출자총액제 부활과 순환출자 전면해소, 고질적인 일감몰아주기와 내부거래를 엄단하기로 했다. 금산분리 관철 및 재벌세를 신설하고 소득상위 1%에 과세를 강화하기로 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을 한층 무겁게 하고 재벌 소속사에 대한 연기금의 지분비중을 늘려 재벌을 정부가 직접 컨트롤하겠다는 것이다. 세금 없는 재벌의 편법승계 악습도 뿌리를 뽑을 예정이다. 다크호스 안철수 교수가 변수이나 그의 재벌관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어느 쪽이 정권을 잡든 중소기업 영역침범, 부당내부거래, 지배구조개선에 대한 압박은 불가피하다. 야당이 집권하면 최악이어서 재계는 벌써부터 몸을 사리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도처에 암초가 있어 말잔치로 끝날 개연성이 농후하다. 사방 백리 안에 굶는 사람들이 없도록 하며 재산은 만석 이상 늘리지 않도록 하고 흉년에는 특히 재산을 불리지 말라는 경주 최부잣집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