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의사의 시신유기 사건은 피의자인 의사 김모(45)씨가 과실로 사람을 숨지게 한 뒤 시신을 내다버린 것으로 경찰 수사의 결론이 내려졌다.
김씨가 이모(30ㆍ여)씨에게 수면유도제와 마취제 등 13종의 약물을 섞어 투여해이씨가 숨졌지만, 김씨의 고의적 살인 혐의는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경찰이 검찰 송치를 하루 앞둔 8일 발표한 수사결과에서 김씨에게 적용한 혐의는 업무상 과실치사와 사체유기 등 4가지다. 경찰은 애초 입증하려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혐의를 찾는 데는 실패했다.
그러나 산부인과 10년차 전문의가 생명에 치명적인 마취제를 섞어 투약할 경우의 위험성을 정말 몰랐는지는 의문이다. 또 김씨와 이씨의 관계에 다른 문제점은 없었는지 등도 추가로 확인돼야 할 부분이다.
◇사건의 재구성 = 사건이 일어난 지난달 30일 밤부터 다음날인 새벽까지, 약 6시간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경찰의 수사결과를 토대로 복원해 보면 이렇다.
7월30일 밤 11시. 김씨는 1년간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오던 피해자 이씨를 자신이 일하는 강남의 병원으로 불렀다.
그리고 한 시간 뒤 몸이 피곤하고 위도 쓰려 잠을 푹 자고 싶다는 이씨에게, 김씨는 수면유도제인 미다졸람을 생리식염수에 섞어 투여했다.
그러고 나서 이씨를 사망에 이르게 한 3가지 마취제도 포도당 수액과 함께 혈관에 주입했다. 경찰은 김씨가 이씨를 살인하기 위해 마취제를 섞은 건 아니라고 봤다.
점적 정맥주사(V자 관을 통해 한 방울씩 천천히 투여하는 방식)로 약물을 투여해 별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는 김씨의 진술은 거짓말탐지기에서도 '거짓'으로나오지 않았다.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걸 직감했는지 숨진 이씨는 밤 11시15분부터 40분간 여러차례에 걸쳐 나로핀과 베카론 등 이들 마취제가 어떤 약물인지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검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수면유도제 투여와 함께 잠들었던 이씨는 10분 뒤 잠시 깨어나기도 했지만 이내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고 김씨는 말했다.
김씨가 옆 침대에서 잠든 이씨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알아챈 건 31일 새벽 1시50분께.
김씨는 청진기와 펜라이터를 챙겨와 이씨의 사망을 확인했고 한 시간이 조금 못된 2시40분께 시신을 휠체어에 실어 자신의 차량 조수석에 옮겼다.
하지만 급한 환자가 있다는 병원의 진료 콜을 무시할 수 없어 다시 병원으로 들어갔고, 두 시간 뒤에 나와 이번엔 시신을 이씨의 차량 조수석에 태웠다.
이 과정에서 주차장에 있던 경비업체 직원에게 차 문을 열어달라 하고 음료수까지 건네는 여유도 보인 것으로 조사됐다.
시신을 내다버리려 도착한 곳은 한강 잠원지구 공원 주차장. 날이 밝진 않았지만 눈에 잘 띄는 곳이었다. 김씨는 몰고 온 이씨의 차량 조수석에 시신을 남겨놓은 채 자신을 뒤따라온 부인의 차를 타고 도망쳤다.
오전 5시께 또 한번 병원 '콜'을 받은 김씨는 태연히 환자 진료를 했으며 하루도 채 지나지 않은 31일 오후 9시10분께 경찰에 제발로 찾아와 범행 사실을 털어놨다.
◇남는 의문 = 마취과 전문의들은 김씨가 마취제를 이같이 투여할 경우 사람이 숨질 수도 있다는 것을 몰랐을 리 없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산부인과 10년차 전문의라면 그 위험성을 충분히 알고 있다는 것으로, 김씨가 왜 이런 위험을 감수했는지가 의문이다.
김씨는 몸이 많이 피곤해 잠을 푹 자고 싶다는 이씨에게 수면유도 효과를 높여주려고 마취제를 섞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경찰은 마취제를 혼합 사용한 것을 확인하고 살해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집중 수사했다.
그러나 거짓말탐지기는 물론 범죄행동분석(프로파일링)을 해봐도 뚜렷한 결과를 얻지 못해 수사는 더 나아가지 못했다.
물론 김씨가 공개된 장소나 마찬가지인 병원으로 이씨를 부른 점, 숨진 이씨를 병원에서 데리고 나가는 장면이 CCTV 등에 찍힐 수 있는 점, 쉽게 눈에 띄는 한강공원 주차장에 차와 함께 시신을 버린 점 등은 김씨가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했다고 보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와 함께 피의자 김씨는 부인하고 있지만, 두 사람이 내연 관계가 맞는지 그리고 돈 거래가 있었는지 등은 여전히 풀어야 할 의문점이다.
경찰은 김씨와 숨진 이씨의 통신 내역과 금융 계좌를 수사하는 등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검찰 송치 이후에도 계속 수사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경찰이 밝힌 '시신유기' 사건 전말과 의문점
입력 2012-08-09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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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09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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