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 12월 28일 파리 그랑카페의 지하 인디안 살롱. 오귀스트와 루이 뤼미에르 형제에 의해 움직이는 사진이 세상에 처음으로 공개됐다. '영화의 탄생'이다. 자신들이 1년전 개발하고 특허를 얻은 영화 카메라 겸 영사기인 '시네마토 그라프' 덕분이었다. 첫 상영회. 노동자가 공장을 떠나는 모습을 담은 '뤼미에르 공장의 출구', 기차가 역에 도착하는 '기차의 도착' 등 모두 10편. 스토리는 물론 없다. 사진이 움직인다는 것만으로 사람들은 경악했다. 대성공. 이날 이후 영화는 전세계 문화사업의 총아가 되었다.

용감한 형제로 인해 영화가 탄생했듯 영화계에서 형제 감독의 활약은 눈부시다. 조엘과 에단 코엔. '코엔형제'로 더 유명한 천재감독이다. 공동감독을 고집하는 이 멋진 형제들은 2007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로 아카데미 작품·감독상을 받았다. '메트릭스'의 앤디와 래리 워쇼스키 형제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얼마전 형 래리가 성전환 수술을 함으로써 남매 감독으로 타이틀을 바꿨다. 래리는 이름도 라나로 바꿨다. 영화 같지만 실화다. 이외에도 화장실 유머의 대가인 '덤엔 더머'의 패럴리 형제, 이탈리아의 따비아니 형제, 홍콩의 팡 브라더스. 우리나라에도 있다. '화이트 저주의 멜로디'의 김곡과 김선, 박진오와 박진표. 고 하길종과 하명중.

빼놓을 수 없는 형제감독이 또 있다. 스코트 형제다. 리들리와 토니. '난형난제'라는 말은 이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형 리들리의 필모그래피는 정말 대단하다. SF 영화의 한 획을 그었던 '브레이드 러너'와 '에일리언', 그 유명한 '델마와 루이스', '글래디에이터', '블랙 호크 다운', '프로메테우스'를 감독했다. 스타 제조기인 동생 토니도 만만치 않다. 톰 크루즈를 스타의 반열에 올린 '탑건', 브래드 피트 발킬머 게리올드만 데니스 후퍼가 미미한 조연으로 얼굴을 내민 '트루 로맨스'는 또 어떤가. 드니로의 광기가 오히려 슬펐던 '더 팬' 그리고 '에네미 오브 스테이트'도 빼놓을 수 없는 그의 작품이다. 마초이즘이 강했던 토니가 주초 LA 산 페드로 빈센트 토마스 다리에서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뛰어내렸다. 참으로 아까운 감독 한 명을 잃었다.

/이영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