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창수 / 객원논설위원,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에펠탑의 경제적 가치가 무려 616조원에 달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다. 이탈리아 몬자-브리안자 상공회의소(CCMB)가 최근 유럽의 주요 기념물·유적들을 이미지, 브랜드 가치, 경관가치, 고용 창출 효과, 관광객 수 등 10가지 지표를 토대로 평가한 것이다. 이 연구에 의하면 프랑스 파리의 랜드 마크인 에펠탑의 경제 가치가 무려 3천430억 파운드(약 616조원)에 이른다니 놀랍고 부럽다. 다른 기념물·유적의 경제적 가치평가도 제시되었는데, 로마의 콜로세움은 약 129조원,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파밀리아 성당은 약 127조원, 이탈리아 밀라노의 도오모 성당은 약 116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889년 세워진 에펠탑은 매년 관광객 800만명이 찾고 있는 유럽 최고의 관광명소이다. 616조원은 프랑스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5분의 1에 해당한다고 하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 더구나 에펠탑은 유럽 도시의 기념물 유적 가운데 최상위 7위 안에 들어간 다른 기념물이나 명소의 경제가치를 합한 것보다도 높은 가치를 지닌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평가 결과는 도시의 랜드마크나 창의적 기념물이 갖는 중요성을 재확인시켜준 것이다.

에펠탑이나 콜로세움과 같은 역사적 명소는 아니지만 방문객을 불러들이는 매력적 상징물을 가진 도시는 의외로 많다. 인어공주 이야기를 조형물로 만들어 유명해진 코펜하겐이나, 물고기의 몸에 사자의 얼굴을 한 머라이언(Merlion)으로 유명한 싱가포르도 그 사례이다.

덴마크 코펜하겐 항구에는 항구를 상징하는 작은 인어공주 동상이 있다. 가스텔레트 요새가 있는 해안에 위치한 이 인어공주 상은 조각가 에드바르트 에릭슨이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를 참고로 하여 자신의 아내를 모델로 하여 만든 조각이다. 80㎝에 불과한 작은 동상이지만 코펜하겐을 찾는 관광객이 반드시 방문하는 관광 명소가 되었다. 그런데 코펜하겐 항구의 '외로운' 인어공주가 최근 꿈에 그리던 왕자를 찾게 되었다는 것이다. 코펜하겐 북부의 항구에 인어공주의 짝이 됨직한 멋진 왕자 상을 세웠기 때문이다. 이 왕자 상은 인어공주상과는 50㎞나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지만 인어공주와 비슷한 자세로 앉아 인어공주를 바라보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어 코펜하겐 사람들의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한다.

싱가포르의 머라이언상 이야기도 재미있다. 머라이언상의 머리는 사자이고 몸은 물고기의 모습을 한 석상(石像)으로 싱가포르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 상징물은 옛날 수마트라 왕자가 새로운 영토를 찾아 이곳에 당도했을 때 흰 갈기를 가진 사자가 살고 있는 것을 보고, 이 지역을 '사자의 도읍'이라는 뜻의 '싱가푸라'라고 이름 지었다는 지명유래에 착안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낮에는 분수를 내뿜고, 밤이면 조명을 받으며 바다를 향해 서 있는 머라이언 상의 늠름한 모습은 많은 관광객을 모으고 싱가포르에 대한 강한 인상을 남기게 하는 명물이 되었다. 머라이언 공원의 연간 방문객은 800만명에 달하는데 그 핵심적 매력물은 싱가포르의 신비한 전설을 들려주는 머라이언상이라 한다. 해양설화와 도시 공간을 결합시켜 매력적인 장소를 창조해낸 대표적 사례이다. 싱가포르 당국은 머라이언 공원 외에 또 다른 머라이언상을 세웠는데, 센토사 섬에 위치한 높이 37m의 거대한 머라이언 타워가 그것이다. 밤이면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이 머라이언상은 섬 전체를 조망하는 전망탑으로도 쓰인다.

철탑 하나로 616조원의 가치를 창조한 파리, 인어공주 이야기를 도시에 재현하고 재현된 조각 작품을 소재로 다시 새로운 로맨스를 창조한 코펜하겐, 단순한 지명유래담에 상상력을 보태 항구 도시의 매력과 가치를 높인 싱가포르의 사례에 견주어 보면, 우리나라의 도시들은 기능주의의 과잉으로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시멘트 숲으로 남아 있는 도시에 이야기와 감동을 이입하여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소'로 바꾸는 일을 실천할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