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에도 100년 이상의 장수기업들이 있다. 국내 최초기업인 116년 역사의 '두산'(1896년 창업)을 비롯해서 '동화제약'(1897년 창업, 115년)과 '서울신문'(1904년 창업, 108년)들이 바로 그들이다. 또 100년에 약간 못 미치는 장수기업에는 '성창기업'(1916년 창업), '삼양사'(1924년 창업), '유한양행'(1926년 창업) 등이 있다.
'성창기업'은 1916년 설립 이후 96년간 목재업에 집중했으며, '삼양사'는 88년동안 제당사업에 집중한 기업이다. '유한양행' 역시 86년동안 제약업이라는 한우물을 파며 장수해온 기업이다. 1945년에 창업한 해방둥이 기업들('한진', '태평양', '중외제약' 등)은 현재 67년 역사를 통과하고 있다.
이들 장수기업은 공통 비결이 있다. 첫째 한 가지 사업에 집중하는 '한우물경영', 둘째 마른 수건도 다시 짠다는 '짠돌이 경영', 셋째 돌다리도 수도 없이 두드린 뒤 건넌다는 '보수(保守)경영' 등이다. 이 공통 비결은 '위험을 가급적 최소화하면서 억척같이 수익을 좇고 보수적으로 원가를 절감했다'로 집약된다.
그런데 이 장수비결들은 영원한 비결이 아니다. 한국경제에서 현재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업종인 반도체, 자동차, 휴대전화, 디스플레이 업체들에게 한우물을 파고, 비용을 줄이며, 보수경영을 하라고 요청할 수 없다. 그들의 싸움은 위험에 도전하며 R&D에 투자하고 혁신을 창조하는 것에서 결정된다. 그러면 과거 장수비결과 현재의 우량기업의 비결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은 시장에 있다. 과거 장수기업은 내수시장을 상대하면 됐지만, 현재 우량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해야 한다. 즉, 과거 우리 장수기업들이 주로 상대했던 내수시장에서는 보수경영이 적합했다.
우리 내수시장은 시장규모도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안정적인 점령이 가능했고, 또 다른 국가의 글로벌 업체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보호장치도 있었다. 그런데 이 시장 범위가 바뀌면서 장수전략도 변하게 된 것이다. 대부분의 산업에서 내수시장의 범주를 넘어선 글로벌 시장경쟁에 편입되었으며, 이에 따라 글로벌 판세를 주도하는 실력과 경쟁력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해외시장에서 뿐만 아니라 내수시장에서의 전쟁에서도 혁신 없는 보수경영은 오히려 위험하다. 또한 비용만을 줄이려다가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를 놓치는 것은 생명을 단축시키는 행위와 같다.
과거 많은 장수기업들을 낳은 제약업종에서 이 고민이 특히 심각하다. 제약업체들 중에는 장수기업뿐만 아니라 30년 이상 흑자를 기록한 기업들도 상당수에 달한다. 그러나 FTA 및 바이오산업의 성숙 등과 같은 새로운 여건에서는 원가절감과 내수시장 영업력으로는 해외 거대 업체들을 상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렇게 글로벌 시장 경쟁에서는 보수적 위험회피는 오히려 독(毒)이 된다. 현재 한국의 대표산업인 반도체, 휴대전화, 디스플레이, 자동차, 조선 산업 등 선도업체들의 성장경로를 보면 큰 위험을 감수하면서 지속적으로 혁신하는 것만이 장수비결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장수기업이 되는 진로는 시대에 따라 변한다. 과거 장수기업의 비결만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물론 자신이 대처할 시장이 여전히 내수시장이라면 과거 장수비결을 그대로 따르면 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업들이 그렇듯이, 글로벌 시장에 나가거나 혹은 우리 시장에서 글로벌 업체들과 경쟁해야 한다면, 혁신과 R&D투자만이 장수비결이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장수기업 비결을 시대와 조건을 뛰어넘는 영원한 바이블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류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