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재 논설위원
요즈음 한 케이블방송에서 방영되고 있는 '응답하라 1997'이 꽤 인기다. 아니 폭발적이다. 특히 이말삼초(이십대 후반 삼십대 초반) 세대들에겐 신드롬까지 불러일으킬 정도다. 평균 시청률은 3.7%, 최고 시청률은 5.52%다. 케이블방송에서 이 정도의 시청률이면 공중파에선 40% 이상이다.

대박이 터진 것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에는 드라마에 대한 뒷담화로 홍수를 이룬다. 한때 '세시봉'의 재조명으로 50대들이 열광했던 것에 버금간단다. 드라마의 완성도도 최상이다. 스토리나 배우들의 연기도 압권이다.

20대 후반·30대 초반세대 사이 신드롬
캐릭터·배경 보면 단순한 성장드라마 아냐
박근혜후보 역사문제 해답 담겨있어

드라마의 배경은 부산. 이것도 의외다. 대부분 드라마가 서울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이 드라마는 발상의 전환으로 부산을 택했다. 진득한 부산사투리. 시간은 1997년 부산의 한 고등학교와 2012년 그 고등학생들의 동창회 모임이 교차로 보여진다.

1997년. 생각하기도 싫은 IMF가 터진 해다. 한달 뒤 대통령 선거도 있었다. 선거 덕분에 전라도와 경상도의 지역감정도 최고조에 달한 해이기도 하다. 대통령 선거가 뭔지 어른들이 지역감정으로 핏대를 세울 때 고등학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나?

이 드라마는 전부는 아니지만 비중있게 그것을 조명한다. 아이돌 그룹 H.O.T와 젝스키스의 광팬의 처절한 싸움이 있었다. 그들의 싸움은 김대중 지지자와 이회창 지지자들의 싸움 이상이다. 드라마는 그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일종의 청소년 성장드라마다. 그런데 뜯어보면 청소년 드라마도 아니다.

H.O.T의 광팬인 주인공 시연의 아버지는 전라도, 어머니는 부산 출신이다. 지역 감정이 드센 시절임을 상상해 보라. 반에서 꼴등인 시연을 좋아하지만 고백을 못하는 윤제는 전교 1등 모범생이다. 그런데 윤제의 형 태웅도 시원을 좋아한다.

그런데 문제는 태웅의 캐릭터다. 학력고사 전국 수석을 했지만 사범대를 진학하고 교사생활을 하다 그걸 접고 벤처회사를 차린다. 성공한 태웅은 벤처 주식을 모두 사회에 기부하고 대학 교수가 된다. 시대는 2012년으로 바뀌고 대학교수 태웅은 대통령 선거에 나선다.

낯익은 구조다. 혹시 안철수? 그럴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시청자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가 단순한 '성장통'을 다룬 청춘드라마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 박근혜 후보의 아킬레스건인 20대, 30대가 열광하고 있다. 제작사도 당황할 정도다.

드라마의 인기가 높자 '응답했다 2012'를 스페셜로 제작해 내놓았다. 1997과 2012. 무슨 함수관계가 있어 보인다. 모두 선거가 치러지는 해다.

'인혁당사건'과 관련 역사의식 비판을 받고있는 박근혜 후보는 20·30대 지지율 답보에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응답하라 1997'에 그 해답이 담겨 있다. 권력도 전교 수석도 서울대 법대도 이 드라마에선 중요하지 않다. 학벌에 대한 갈등은 전혀 없다. 재산 역시 중요하지 않다.

목숨을 걸어도 좋을 좋아하는 아이돌 스타만 있을 뿐이다. 드라마는 15년동안 가슴속에 묻어 둔 추억을 삐삐·pc통신·슬램덩크·다마고찌같은 온갖 코드로 그냥 건드리고 있을 뿐인데 20·30대가 열광한다. 박근혜 후보가 이 드라마를 반드시 봐야하는 이유다.

박근혜 후보는 아직도 40년 전에 일어난 일들에 연연해하는 것처럼 보인다. 답답하고 고집스러울 정도로 역사의식에 스스로 얽매여있는 것이다. 수많은 보수들이 '응답해라! 박근혜'라고 비명처럼 외쳐도 역사문제에 관한 한 묵묵부답이다.

보수들이 멘붕상태까지 이른 것도 박근혜의 이런 고집이 대통령의 자리에 가서도 계속될지 모른다는 두려움때문이다. 50대들은 암울했던 70·80년대 일어난 수많은 정치적 사건들을 꺼내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별로 좋은 기억도 없고 온통 암흑빛인 그시절을 의식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훌훌 털어버리고 싶은지도 모른다. 50대의 과거와 20·30대의 과거가 다른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런데 정작 역사의 한 가운데 서있어 오히려 먼저 나서서 털어버려야 할 박 후보가 더 집착하는 것 같아 답답하다. '응답했다! 박근혜'라는 답이 와야 그들은 편하게 투표장에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