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중반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책가방은커녕 보자기에 둘둘 말아 어깨와 등을 가로질러 질끈 동여맸다. 미국에서 원조받은 옥수수죽과 빵을 학교에서 만들어 나누어 먹었다. 

점심시간에 죽을 한 술씩 떠 입맛을 다시다 만 아이들은 모두 운동장으로 달려나갔다. 이름하여 '중간놀이' 시간. '올해는 일하는 해, 모두 나섰다~~~.' 선생님이 시키는대로 남녀 구분없이 음악에 맞춰 삽질하는 모습을 하며 무용을 했다. 한 반에 70명이나 되는 콩나물교실도 모자라 2부제 수업을 했다.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 초기. 1인당 국민소득은 100달러 수준에 불과했다. 외식이라곤 초등학교 졸업식 날 어머니와 먹은 100원 짜리 짜장면. 그래도 그 맛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고깃국도 설날·한가위·생일 등 1년에 2~3번 먹어보는 게 고작이다. 

추운 겨울 퇴근하는 아버지를 마중하기 위해 형과 같이 버스 정류장으로 시린 손을 호호 불며 나간다. 아버지께서 사주시는 따끈따끈한 국화빵이라도 몇 개 얻어먹기 위해서다. 교회 마당이나 동네 공터에서는 땅거미가 져 공이 안 보이는데도 축구하느라 정신이 없다. 이회택·김정남·이세연 등 청룡팀이 당시 유일한 우상이었을 때다.

'58년, 개띠'들의 자화상이다. '58년, 개띠'들은 우리나라 베이비부머(baby boomer)의 아이콘으로 통한다. 베이비부머란 6·25전쟁 휴전 직후인 1955년부터 산아제한 정책이 도입되기 직전인 1963년까지 태어난 세대들을 말한다. 이들의 은퇴 대열이 벌써 시작됐다. 경기불황이 극심해지면서 대기업들은 이미 소리없이 인력 감축을 진행하고 있다. 베이비부머들이 타깃이다. 

상시 구조조정 체제에 돌입한 건설업종은 말할 것도 없고, 제약·정유·자동차 등 전체 업종을 망라한다. 이 여파는 협력사나 중소기업으로까지 영향을 미친다. 다행스럽게 목숨(?)이 붙어있다손 치더라도 길어야 몇 년이다.

한국전쟁 이후 이 시기에 태어난 인구는 약 820만명이고, 현재는 710만명 정도라 한다. 이 중에서도 1958년생에 이르러 출산이 절정에 이르렀다. 중·고교를 추첨으로 입학하기 시작한 이른바 '뺑뺑이' 세대이자, 소(牛)판 돈으로 대학에 갔다고 해서 우골탑(牛骨塔)이란 신조어를 만들어낸 세대들이다. 

10대1이 훨씬 넘는 경쟁률을 뚫고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유신과 휴교령에 맞서기도 했고, 산업화의 역군이면서도 민주화를 앞당긴 주인공들이기도 하다. 40대에 들어서 IMF 외환위기로 거리로 내쫓겼는가하면 수 년전 글로벌 금융시장 위기로 정년을 채우지도 못하고 밀려난 '사오정'들. 격변의 현대사를 목격했고, 세계 10위의 경제대국 건설에 일익을 담당한 사람들이다.

전체 인구의 14.6%에 이르는 이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한국 사회의 중심축이라 할 수 있는 거대한 집단이다. 49~57세. 아직 한창 일할 나이에 한 나라의 거대집단이 아무런 대책없이 직장에서 내몰린다면 여간 큰 문제가 아니다. 초고령화 사회를 촉진한다.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큰 손해다. 청년 실업자인 '이태백'이 수두룩한 마당에 무슨 베이비부머 걱정이냐 반문할지 모르지만 평생 국가와 사회가 기른 인재들을 한 순간에 버린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정년 연장이 거론되기도 하고, 임금피크제가 시행되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아직은 없다.

이번 대통령 후보들도 베이비부머이거나 이에 준하는 세대들이다. 아직 공약들이 구체화되지 않아서인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다. 선진국형 국가로 자리잡기 위해선 베이비부머에 대한 정책이 중요한 어젠다가 될 수도 있다. 부동산 경기 침체의 이면(裏面)에는 은퇴대책으로 너도나도 집을 내다 팔려고 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경제성장과 복지도 중요하다. 

그러나 앞으로 이들에 대한 재취업과 고용촉진 대책에 있어 새로운 패러다임은 더욱 중요하다. 이를 먼저 뼈저리게 인식하는 대선 후보가 누구일지 700만이 넘는 베이비부머들은 주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