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한구 수원대교수·객원논설위원
역사를 반추하다보면 미스터리한 일들이 많다. 아득한 옛날은 고사하고 비교적 최근의 사실(史實)들 속에서도 의아한 일들이 자주 확인되는 것이다. 그중 하나가 식민지기(18~20세기)의 인도역사이다.

인도는 3세기에 가까운 기간의 대부분을 영국 동인도회사의 관리를 받았는데 이 회사는 영국정부와는 무관한 순수 민간무역업체였다. 동인도회사는 이윤극대화를 위해 최소통치비용으로 인도를 경영했다. 세계최대 규모의 대륙국가가 한 기업에 의해 식민지배를 받았다는 점이 이채롭다.

19세기 중반 동인도회사가 해체되면서 인도에 대한 지배권이 영국정부에 이양되었다.

영국이 지배한 영역은 오늘날의 인도는 물론이고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네팔, 미얀마와 북서쪽의 페르시아 남부와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등 인도대륙 전체를 아울렀다. 당시 인도대륙의 인구수는 무려 4억여명인 데 비해 인도총독부 소속 브리튼출신의 군인, 경찰, 일반행정직 공무원 총수는 수천명에 불과했다.

인력증원에 따른 재정 부담이 가장 큰 이유였다. 사상최대의 대영제국 형성을 위한 물적 기초가 확립되었던 것이다. 덕분에 영국은 1857년 세포이폭동으로 혹독한 시련을 겪기도 했으나 이후에도 재정지출 최소화원칙은 유지되었다. 영국 특유의 '작은 정부'관이 간취되는 대목이다.

대선이 임박하면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증세론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고 있다. 새누리당의 김무성 총괄선거대책본부장이 불을 지피고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구체적인 증세액까지 제시하고 나선 것이다.

안철수 후보는 아직 신중한 입장이나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세 후보 모두 경제민주화 공약을 전면에 내세운 터여서 복지재원의 추가소요가 불가피하나 기존 세출구조하에서의 염출이 곤란한 것으로 판단한 때문이다.

공공부문의 살림형편은 어떠한가.

중앙 및 지방정부의 국가채무는 435조원에 GDP대비율이 35%로 경제협력기구(OECD) 평균 103%에 한참 못 미쳐 지표상으론 매우 유망하다. 또다시 빚을 내서 복지재원으로 충당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으나 대외발 악재가 여전해 부담이 큰 것이다. 4대강사업처럼 공기업들에 국책사업을 떠넘기는 식으로 국가재정에서 직접 조달할 수도 있으나 이 또한 녹록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공기업을 포함한 공공기관의 총부채 규모가 지난해 말 기준 508조원으로 국가채무를 훨씬 능가한 것이다. 공공기관의 채무까지 포함하면 우리나라 국가채무비율은 70%를 초과하는 실정이다.

부채를 감당할 만큼 자산이 충분하다면야 별문제이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공공기관의 자산은 연평균 10.3% 증가한 반면에 부채는 16.8%나 불어났다.

자산보다 부채가 더 빠른 속도로 늘고 있는 것이다. 수익성 악화는 또 다른 변수이다. 공기업의 매출액대비 영업이익률은 2010년 7%에서 2011년에는 5%로 하락했는데 금년 성적은 더 나쁠 전망이다. 적자기관도 수두룩하다. 증세론이 힘을 받는 이유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공공부문의 살림규모가 갈수록 눈덩이처럼 커지는 것이다. 사업성은 차치하고 무조건 덩치만 키우고 보는 식이니 말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전 재벌의 대마불사(大馬不死) 신화가 공공부문에서 재현되는 형국이다. 고질적인 방만경영의 심화는 점입가경이다.

빚잔치로 거덜날 지경의 모 지자체가 공유재산을 매각해서 직원들에게 올 추석특별상여금을 지급한 사례가 상징적이다. 공공기관의 요직은 구태(舊態) 정치인과 퇴출관리들의 꿀단지로 전락한 것도 주목거리이다. 공직사회 전체가 세금이란 화수분에 도취한 인상이다.

이런 구조하에서 어느 유권자가 증세론에 동의하겠는가. 또한 거론 중인 부유세의 경우 서민층에 전가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의 의지가 문제이지 공공부문 슬림화를 통한 복지재원 염출은 전혀 불가능하지 않다. 증세타령만 하는 미래 권력들의 구시대적 발상에 실망이다. '작은 정부'의 참의미부터 깨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