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화무쌍한 요즘 날씨가 우리 정치판을 닮았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지 8개월,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지 5개월이 지났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서울 강남의 한 오피스텔에 국정원 여직원이 감금되었다는 뉴스로 대선 정국이 시끄러웠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게 벌써 8개월 전의 일이다. 박 대통령이 당선되고 취임한지 5개월이 지났는데 그 국정원 여직원 사건은 지금도 대한민국 정치의 한 복판에서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처럼 웅크리고 있다. 누가 불어 넣었는지 모르지만 대단하게 질긴 생명력이다. 이런 와중에 국정원장이 불쑥 NLL 대화록을 공개함으로써 정치판은 노무현 전 대통령 NLL 포기발언으로 비화되고 정국은 큰 혼란 속에 빠져 버렸다. 결국 국정원 국정조사로 비화된 이 사건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마침내 민주당이 서울시청 앞 광장에 천막당사를 차리고 장외투쟁을 시작하는 것으로 비화됐다. 지난 토요일에는 서울 청계광장에서 '민주주의 회복 및 국정원 개혁촉구 국민보고대회'를 열며 마침내 촛불까지 들었다.
이제 9월 정기국회가 어떻게 진행될지 이제 불을 보듯 뻔하다. 예고도 없이 갑자기 출몰해 이곳저곳을 깨부수는 국지성 호우처럼 정국은 또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할 혼미속에 빠져 들면서 순간 순간 국민들의 속을 뒤집어 놓을 것이다. 결국 애꿎은 서민들만 열대야로 인한 불쾌지수성 스트레스에 정치성 스트레스까지 합해져 최악의 여름을 보낼 가능성이 높아졌다.
왜 이러는 걸까. 우리 정치는 왜 이렇게 후진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왜 국민들을 이렇게 복잡한 사건의 공범이 되도록 강요하는 걸까. 이명박 정부 초기에는 광우병 촛불시위로, 노무현 정부 때는 탄핵으로 정국은 지리멸렬했던 경험을 갖고 있으면서 왜 서로 헐뜯고 깎아내리는데 당력을 소비하고 국민까지 끌어들여 국론을 분열시키는 걸까.
미국이 대통령까지 나서서 보호무역주의로 회귀하고, 일본 아베 정부가 개헌을 불사하며 우경화 정책을 진행중인데 우리는 대통령선거가 종료된지 5개월이 지났는데 여전히 정쟁에 몰두하는 것을 보면 이는 태생적인 문제에서 풀어야 할 것 같다. 연산군 4년인 1498년 김종직의 '조의제문'이 촉발했던 무오사화에서 숙청된 사람은 52명, 그중 사림 6명이 사형을 당했다. 승기를 잡은 훈구파는 환호작약했다. 그러나 왕권을 강화하고 싶었던 연산군이 훈구파를 그냥 둘리 없다. 6년뒤 갑자사화에선 숙청된 239명중 122명이 사형이나 부관참시를 당했다. 이번엔 훈구파가 거의 전멸됐다. 이후 이어진 기묘사화나 을사사화때도 사림파와 훈구파는 목숨을 내놓고 싸웠다. 구체적인 증거보다 '유학에 비추어볼 때 간신'이라는 식으로, 소문이 이러니 벌을 주어야 한다는 터무니없는 '풍문탄핵'으로 정적을 공격했다. 훈구파와 사림파의 당파 싸움도 전통이라고 그것이 이어져 현재까지 내려온 것은 아닐까. '밀리면 죽는다'라는 생각이 정치인들을 막말로 무장한 전사로 만들어 서로 피를 봐야만 만족하는 근성을 갖게 만든 것은 아닐까. 500년된 망령들이 정치인들의 몸속에 들어가 좀비처럼 되살아난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작금의 정치판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개탄스러울 뿐이다.
/이영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