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물을 얻어 헤엄치되 물을 잊어 버리고, 새는 바람을 타고 날되 바람이 있음을 알지 못한다.(魚得水逝 而相忘乎水 鳥乘風飛 而不知有風) 중국 명나라 때의 고전 '채근담'에 나오는 말이다. 사람들 역시 공기 속에 살면서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듯이 우리는 작은 것에 감사할줄 모르면서 살아가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아니, 작은 것이라 생각했던 일들이 이제는 너무나도 큰 일이었다는 것을 새삼 느끼는 요즈음이다. 어렸을 적 어른들로부터 6·25 전쟁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별 느낌이 없었다.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이니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만 이제 이 마저도 잊혀지지나 않을까 걱정스런 생각도 든다.

한국전쟁 당시 풀과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었다는 할아버지의 말씀에 라면을 끓여 먹지, 왜 그걸 먹었느냐고 손자가 반문했다는 얘기를 듣노라면 할 말을 잃는다. 지난 달 정전 63주년을 맞아 국가와 민간단체들이 주도하는 각종 기념사업들이 펼쳐졌다. 특히 해외 참전 용사들을 위한 프로그램들이 눈길을 끌었다. 국군은 물론이거니와 유엔 참전 용사들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오늘의 자유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은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이제 발전된 대한민국이 은혜를 갚을 때가 왔다. 60여년 전 당시 세계 최빈국(最貧國)의 하나였던 대한민국이 현재 세계에서 경제 강국으로 자랑스럽게 남아 있을 수 있게 한 것도 모두 이들의 헌신이 큰 역할을 했다.

6·25 당시 우리를 도왔던 해외 참전국은 전투지원 16개국과 의료지원 5개국 등 모두 21개국 약 194만명이다. 이 중 필리핀 태국 에티오피아 남아공 콜롬비아 터키 등 일부 국가들은 현재 우리보다 형편이 많이 어렵다. 적어도 이런 국가 출신 참전 용사들만이라도 어떻게든 실질적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적극 마련해야 한다. 지난 달 터키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전 참전용사 큐축(83) 할아버지도 한국방문을 열망하고 있었다. 매년 추첨을 통해 방문자를 선정하지만 올해도 탈락해 무척 아쉬워 했다. 대한민국재향군인회장으로부터 받은 '평화의 사도' 증서와 기념 메달 등을 보여주며 가보(家寶) 이상으로 자랑했다.

1951년 1월 25~27일까지 용인 김량장에서 벌어졌던 중공군과의 전투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터키군 1개 여단과 중공군 2개 사단이 맞붙은 전투로 터키군은 총검에 의한 백병전으로 병사 1명당 40명의 적을 무찔러 '백병전의 터키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 3일간의 전투에서 확인한 중공군의 시체는 474명이고, 그들 대부분이 개머리판에 의해 턱이 깨지고 총검에 찔린 모습이었다고 했다. 당시 터키군이 151고지에서 압승한 30분간의 백병전 상황은 UPI 기자에 의해 전 세계에 알려졌고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부대표창을 받기까지 했다고 회고했다. 1953년에는 수원에 1개 대대가 주둔하고 있었는데 터키 장병들은 늘어나는 전쟁 고아들을 위해 군수품을 아껴 '앙카라'라는 고아원 겸 학교를 설립 운영하기도 했다. 최근 수원시는 서둔동 341의 1(서호초등학교 인근)에 앙카라 학교공원 복원 조성공사를 마치고 6월 25일 개장식을 갖기도 했다.

80~90세가 된 이들 벽안(碧眼)의 노병들은 '전혀 알지도 못하는 나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국민을 지키라는 부름'에 응했던 사람들이다. 터키에서는 한국전 참전이 조금 늦어지자 '왜 형제의 나라를 빨리 돕지 않느냐'며 시위까지 벌였다.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다. 2006년 삼성과 LG가 주미 대사관을 통해 6·25 참전용사들에게 2천대의 휴대전화를 제공해 화제가 됐었다. 롯데는 태국 현지 참전용사가 사는 '람인트라' 지역에 복지센터를 지어주고 태국 참전용사 보훈활동에 7억여원을 지원하기도 했다. 이같은 일은 계속돼야 한다. '한국전 참전용사'라는 긍지를 훈장처럼 여기며 사는 이들에게 그 감사함을 두고두고 잊어서는 안 된다. 광복을 위해 청춘을 이 땅에 불살랐던 순국선열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독립된 나라에 살고 있다는 감사함이 있어야 우리의 역사와 우리 말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준구 경기대 국어국문학과교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