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국정감사의 압권은 10월15일 정무위 공정거래위원회 국감에서 일어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임준성 한성인베스트먼트 대표가 수입차 업계의 부품가격 담합에 대한 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임 대표 왈, "저희는 부동산 임대업을 하는 회사이고, 자동차와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국정감사장은 순간 얼어 붙었다. 민주당 의원이 수입차 한성모터스 사장을 부른다는 것을 부동산 임대업을 하고 있는 같은 이름의 다른 회사 대표를 부른 것이다. 위장하도급 불법파견 문제로 출석한 삼성전자 서비스대표도 엉뚱한 질문을 받고 당혹감에 빠졌다. "삼성전자 서비스는 AS때 사용되는 부품을 삼성전자로 부터 받느냐"라는 엉뚱한 질문 때문이다. 국감장은 멘붕에 빠졌다. 전문성이 부족한 국회의원들 때문이다.
더 놀라운 것은 기업대표가 무려 3시간을 기다려 받은 질문이었다는 것이다. 14일 환노위 국감에서는 늦은 밤 11시40분 위원장은 증인과 참고인이 자리에 있는지 출석을 체크하는 일도 벌어졌다. 갑의 횡포를 따지는 국감장에서 국회의원들이 최대 슈퍼갑으로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상황이 이러니 국감에 불려나온 기업인들의 입에서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 것은 당연했다. 소환된 기업 대표들마다 "이미 공정위에서 시정명령 요구를 받은 대로 조치를 취했는데 왜 국감장에 와야 하는지 납득이 안 간다"며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건지 모르겠다"고 아우성쳤다. 한 외국기업 대표는 "자정까지 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일찍 끝내줘서 다행"이라며 한국 국회의원들의 서슬퍼런 권위에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번 국감은 피감기관이 628곳 이었다. 국감이 부활된 지 25년 중 사상 최대 규모였다. 그러니 부실한 것은 당연했다.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능력을 지나치게 과대포장해서 벌어진 일이다. 우리 국회의원의 전문성과 능력에 비해서는 절대 할 수 없었지만 밀어붙였다. 애초부터 답변을 듣고 싶은 생각이 없었으니 의미없는 질문들이 넘쳐났다. 최악의 국감답게 '이런 국감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며 국감폐지론을 주장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국감폐지가 불가능하다면 상시국감도 하나의 대안이 될수 있지않겠냐는 의견도 개진됐다. 하지만 한국 정치의 후진성이 과연 상시국감을 감내할 수 있을 지는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만일 상시 국감이 이루어질 경우 우리 국회의 수준에 비추어 볼때 대한민국은 일년 내내 국감을 치르다 결딴이 날 것이다. 상시국감이라는 것이 사안이 발생하면 해당 상임위에서 즉시 감사를 하는 것인데, 우리 정치수준으로 볼때 일부러 감사거리를 만들어 정쟁의 장으로 삼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국감을 받아야 하는 피감기관의 입장에서 볼때 자칫 업무가 마비되고, 기업은 제대로 돌아갈 지도 의심스럽다. 국정감사 망국론이 나오는 이유다.
국회의원들이야 피감기관으로부터 깍듯한 대우을 받아 잘 모르겠지만 25년동안 단 몇 번을 제외하곤 늘 치욕스런 구태가 재현되고 있는 것은 국가나 국민들에게 매우 불행한 일이다. 공무원이건 기업인이건 피감기관이라는 이유만으로 국회의원들로부터 호통을 듣고, 반말이 섞인 멸시와 조롱으로 업신여김을 당하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매년 되풀이되는 '국회의원을 위한 국감'이라면, 이런 국감은 차라리 폐지하는 게 옳다. 만일 폐지가 어렵다면 면책권 뒤에 숨어서 막말을 일삼는 의원들의 그 잘난 특권을 박탈하고, 국감이 끝난후 의원들의 순위를 매겨 하위 50등 의원들을 대상으로 낙선운동을 벌여야 한다. 그래야 국회의원들도 국감장에 빈 가방을 들고 출근하지 않을테니 말이다.
/이영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