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사년 끝자락에 즈음해서 내년도 국내외 경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세계경기의 바닥이 차츰 확인되는 때문이다. 중국경제의 평년작 전망에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그리고 유럽경제에서 긍정적인 조짐들이 확인된 것이다. 일본에서는 아베노믹스의 엔저효과가 내년 중에 본격화할 개연성도 커 보인다. '닥터 둠' 누리엘 루비니 교수는 신흥국들의 명년실적이 최소 금년만큼은 될 것이라며 세계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치를 높이고 있다.
한국경제는 올해보다 약간 호전될 것으로 예측했다. 대외의존도가 G20국가들 중 최고여서 세계경기와의 동조화경향이 한층 커진 때문이다. 갈수록 엥겔계수가 커지는 서민가계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금상첨화이다. 신년운수 점처럼 적중하면 좋고 설사 잘못되더라도 책임추궁 당할 리도 없으니 말이다. 일자리 창출이 당면현안이나 동북아 긴장국면, 가계부채, 환율폭탄 등 곳곳에 암초들이 도사리고 있어 편치만은 않을 예정이다.
경제입법과 관련해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해묵은 성장논쟁이 재연될 조짐이다. 박근혜정부가 경제활성화에 방점을 찍은 터에 대기업들은 그동안 쌓아놓기만 했던 막대한 규모의 현금을 풀어 투자를 늘리겠다며 '손톱 밑 가시' 제거를 주문한 것이다. 새누리당은 기업가정신을 위축시키는 규제 해소에 팔을 걷어붙였다. 여당의 대선공약이었던 경제민주화는 아예 실종된 듯하다. 그러나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의 주장은 정반대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상기될 정도로 민간소비 부진이 매우 심각해 대기업을 더욱 옭아매야 한다는 것이다.
내수 진작이 키포인트이다. 분배구조 악화에 따른 민간소비 위축이 한국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최대요인으로 부상한 것이다. 반세기동안 일관되게 지속된 성장지상주의가 낳은 부산물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주주자본주의의 강요는 설상가상이었다. 국민 대다수가 배금주의와 이기주의의 노예로 전락한 점과도 무관하지 않다. 근면과 정직으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바보로 취급되는 실정이니 말이다. 성공한 기업인들이 국민적 존경을 받지 못하는 것과도 상관관계가 높다.
더 큰 문제는 효율과 형평간의 양립이 곤란하다는 뿌리 깊은 인식이다. 심지어 형평이 '공공의 적'으로 매도되는 형국이다. 성장과 분배가 상충관계에 있다는 것은 고전학파 이래 경제학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명제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는 공정분배를 균등분배로 잘못 파악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균등분배가 성장의 지속에 질곡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은 20세기말 동구권 몰락이 웅변으로 증명하고 있다.
효율과 형평은 상호 보완관계일 수도 있다. 사회계약주의 철학자 롤스(J. Rawls)의 경제정의론에 눈길이 간다. 타인을 사회생활의 동료로 간주, 다른 사람의 성공이나 즐거움이 자신의 행복한 삶에 기여한다는 공동체적 인식이 출발점이다. 한편 후생경제학에선 생산의 효율성과 분배의 형평성이 모두 충족되었을 때 국민들의 경제적 후생이 극대화된다고 간주한다. 따라서 경제정의란 효율성과 형평성이 모두 충족된 상태를 의미한다. 문제는 공정한 분배인데 이는 생산에 기여한 정도에 비례해서 각자의 몫을 결정하는 것이다. 즉 성과에 따른 차등분배이다. 균등한 기회의 제공도 필수요건이다. 참여기회를 갖지 못한 자에게 차별적 결과를 인정하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정의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롤스는 모든 구성원들에게 생산과 관련해서 자신의 능력과 창의력이 발휘되도록 동등한 기회를 제공할 것을 요구한다.
지속가능성장을 위해서는 올바른 시장규범 확립을 통한 지하경제 최소화와 음성소득 차단작업도 병행되어야 한다. 제도경제학 개조(開祖) 베블렌(T. Veblen)은 놀고먹는 유한계급이 많을수록 창조경제는 퇴색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 바 있다. 낙수효과에 의존할수록 양극화는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한국자본주의의 건강성 담보 없는 '코리안 드림'은 공염불인 것이다. 투자유인 제고와 내수활성화가 조화된 청말띠 해를 기대해 본다.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