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모 대학 학생들이 만드는 교양지 '중앙문화' 최근호의 커버스토리 제목이다. 운동권 학생 K씨의 '정의가 없는 대학은 대학이 아니기에 학교를 그만 둔다'는 대자보 내용이 핵심이다. 대학의 가치가 자본의 논리에 의해 유린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학내투쟁과 함께 구성원들의 동참을 호소했음에도 반향 없는 현실에 실망했던 탓이다. 자퇴생 K씨는 물론 그를 외면하는 동료 학생들과 이 문제를 다루는 학생기자 모두의 '안녕하지 못한' 실상이 간취되었다. 이 땅의 절대다수 젊은이들 또한 이 학생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7080가수 사이먼 앤 가펑클의 감미로운 '침묵의 소리' 멜로디가 더스틴 호프만 주연의 영화 '졸업'의 장면들과 오버랩 되어 뇌리를 스친다. '졸업'은 미남청년 벤이 부모 친구인 로빈슨부인 및 그녀의 딸 엘레인과 동시에 애정행각을 벌이는 것을 묘사한 작품으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대학졸업과 함께 백수가 되는 설정도 당시엔 생경했거니와 사회규범의 허용치를 크게 넘어선 주인공 벤의 일탈 때문이었다.
1950~60년대의 미국인들은 부지런히 일해서 초유의 황금시대를 맞이했다. 이를 계기로 미국청년들의 대학진학률이 급격하게 높아져 1960년 400만명도 못되던 대학생수가 1975년에는 무려 1천만명으로 급증했다. 그러나 오일쇼크에서 비롯된 스태그플레이션이 수많은 대학생들을 졸업과 동시에 실업자로 전락시켰다. 풍요로운 유소년 시절을 보냈던 다음 세대들이 성년이 되어 벼락을 맞은 것이다.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아메리칸 드림도 깨졌다. 근면성실해도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고용불안과 고물가에 속수무책이었던 것이다.
1960~70년대의 미국은 마피아, 마약과 히피, 로큰롤과 헤비메탈, 펑키음악, 청바지 등의 시대로 기억된다. 이 무렵 사회에 진출한 젊은이들을 '비트제너레이션'으로 불렀다. '패배의 세대'라는 의미로 현대산업사회로부터 이탈해서 개성의 해방을 부르짖는 무정부주의 경향의 집단을 의미한다. '호밀밭 파수꾼'의 주인공 홀든 코필드는 붉은 베레모를 삐딱하게 쓰고 시도 때도 없이 욕을 입에 달고 사는 문제아였다. 이들 중 일부는 과거의 안일함에 사로잡혀 빈곤 속에서 삶을 마감했다. 이성을 앗아간 정신적 환각은 그들의 신앙(?)이었다.
오늘날 국내 비트족의 상황은 더욱 참담하다. 전후의 경제위기는 청년들의 좌절과 반항문화를 수반했는데 기존의 문화를 거부했던 히피족은 그래도 낭만적이며 애교스런(?)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청년들은 기성문화나 질서에 대한 불만표출은커녕 아예 무반응으로 일관하니 말이다. 엄혹한 경제현실 앞에 젊은이들의 기가 질려버린 것이다.
1990년대 한국과 대만, 싱가포르, 홍콩 등은 일본의 뒤를 이어 새로운 세계 공장으로 부상했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들은 공산품을 미국에 수출해서 만성적 무역적자에서 겨우 벗어났다. 그러나 미국의 달러화 절하 압박이 화근이었다. 외국자본이 철수하고 수출이 곤두박질했으며 자산시장의 거품이 빠지는 등 경제는 재앙수준으로 급전직하했다. 단기간에 수십만 개의 기업이 사라지고 직장인 4명 중 1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연공서열과 종신고용을 특징으로 하는 한국식 경영 대신에 연봉제와 노동유연화란 글로벌 스탠더드가 자리매김했다. 1990년대 초반 학번들은 스스로를 '로스트 제너레이션'이라 불렀다.
2008년의 금융위기는 점입가경이었다. 상환능력이 부족한 미국 가계에 대한 무차별적 대출세일 후폭풍이 국제금융시장을 강타했다. "광란의 파티는 일단 시작되면 곧 걷잡을 수 없이 전개 된다"는 서양의 속담이 입증된 것이다. 개방 폭이 큰 신흥국일수록 심한 내상(內傷)을 입었다. 한국은 10년 전의 위기를 수습하기도 전에 또다시 강타 당했다. 물신주의가 팽배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각국 경제의 동조화 심화로 비트족의 확대 재생산이 불가피하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침묵의 소리는 사회적 암"이란 노랫말에 눈길이 간다.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