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는 한국인들이 사랑하고 한국을 표상하는 나무다. 한국을 표상할 수 있으면서 한국인에게 사랑받아야 할 나무 중의 하나로 소사나무를 추천하고 싶다. 지난 여름 영흥도 십리포 해수욕장의 소사나무 군락지가 피서객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소사나무의 가치를 다시 깨닫게 됐다. 무엇보다 척박한 환경을 견디는 소사나무의 강인한 기질이 우리 민족과 닮았다. 또 고목나무를 연상시키는 구불구불한 줄기와 작은 잎사귀가 어우러진 모습은 한국인의 자연미적 취향과도 잘 어울린다.

소사나무는 이미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나무다. 분재용으로 태어난 나무라고 불릴 정도로 분재목으로 인기가 높다. 잎 크기와 줄기의 모양, 투박스러운 질감 때문에 분재용으로 많이 쓰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분재업자나 애호가들이 소사나무의 성장을 억제하거나 가지를 억지로 구부려서 분재로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 또한 소사나무가 지닌 독특한 조형성 때문에 겪어야 하는 수난(?)인 것이다.

마니산 참성단의 소사나무도 유명하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 소사나무는 비록 높이는 4.8m, 수령은 150여년에 불과하지만 마니산 정상을 촬영한 사진 작품속에서는 실제보다 훨씬 크고 신비한 나무처럼 보인다. 다른 문화재급 노거수들에 비하면 크기나 나이는 내세울 게 없지만, 단군신화에 나오는 신단수(神檀樹)나 신의 거처인 천상과 인간의 지상을 연결하는 우주목(宇宙木)처럼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나무다. 한 줌의 흙도 변변치 않은 참성단 돌 틈에서, 바람막이 없는 산 정상에서 비바람과 눈보라를 견뎌온 나무의 모습이 참성단에 오른 이들에게 더욱 경건한 느낌을 주고 실제보다 큰 나무로 여기게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소사나무는 강한 바람이나 척박한 토양에도 잘 자라는 억센 나무다. 해풍을 막아야 하는 영흥도 주민들이 소사나무로 방풍림을 조성한 이유다. 모래와 자갈 투성이의 해변에서 해풍과 맞설 나무로 가장 적당했던 것이다. 하늘로 키를 높이기보다는 옆으로 줄기를 늘려 가는 소사나무의 '겸손한' 생존전략 덕에 어민들은 바람을 막고 그늘을 얻을 수 있었다. 이가림 시인이 '소사나무 숲'에서 영흥도 십리포의 소사나무 숲을 황해의 파도와 해풍에 맞서는 '방파제'이자 '바리케이드'이며, 십리포 해변을 지키는 '옹이투성이의 노인들, 최후의 민병대'라고 노래한 것도 그 강인한 생존력에 대한 경외감 때문일 터다.

영흥도 십리포 소사나무 군락지는 방풍림으로 조성된 국내 최대 군락지로 어촌생활문화 자원의 가치도 지니고 있어 국가적으로 보호해야 할 숲이다. 그러나 인천시와 옹진군은 피서객 편의를 제공한다는 명분으로 보호림 훼손을 방치하고 있다. 피서객들이 산책로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되 취사행위나 야영은 금지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내유일의 천연보호림의 가치를 설명해 관광객이나 국민들이 스스로 소사나무를 보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소사나무는 서해의 옹진군 백아도에 주로 분포하고 있으며, 바람이 드센 해변이나 산 정상부에 서식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천지역 일대의 수목을 연구해온 권전오 박사는 소사나무의 분포와 서식 특성이 인천의 정체성에 부합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고 보면 인천 시목(市木)으로 지정된 목백합은 인천과는 그리 연고가 없는 나무다. 인천시가 소사나무와 소사나무 군락지에 더 관심을 갖고 인천의 명물로 가꿔 나가는 정책을 제안해야겠다. 소사나무는 역사·문화적 가치를 지닌 나무일 뿐 아니라 그 군락지나 자생지도 관광지로 가꿔 나가야 할 장소들 아닌가. 게다가 한국 특산종인 소사나무는 분재로 각광받고 있듯이 경제적 가치도 풍부한 생물유전자 자원이다.

/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