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민 필요한 행정서비스 '맞춤형 제공'
남 지사 핵심공약 강조… 발빠른 행보
서울시 양천구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A씨는 1주일에 2번씩 새벽시간에 퇴근을 하지만 수원에 있는 집까지 가는 일이 걱정이다.
사당역까지 가면 수원행 광역버스를 탈 수 있지만, 지하철과 버스가 모두 끊긴 시간이라 택시비를 2만원 가까이 지불해야 사당역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이지만, 직장 앞에는 택시마저 잘 다니지 않아 컴컴한 골목에서 수십여분을 기다리기 일쑤다.
A씨의 고민을 단번에 해결해준 것은 '빅데이터'(big data). 서울시가 심야시간대 휴대전화 통화량 30억건과 택시 승·하차 정보 500만건을 분석한 결과, 밤시간 시민들이 집중된 곳을 파악해 지난해부터 9개 노선에서 자정부터 오전 5시까지 '올빼미버스'를 운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시는 또 요일별·시간대별·날씨별 택시 승·하차 정보와 기상정보 등 300억건의 데이터를 분석해 시민들에게는 택시가 잘 잡히는 위치를, 택시기사에게는 승객이 많이 몰려있는 곳을 올해말부터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모두 빅데이터를 활용한 결과물이다.
넘쳐나는, 그래서 언뜻 쓸모없어 보이는 다량의 정보들이 쓰임새에 맞게 가공되면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정보가 될 수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가는 통화를 하고 택시에서 내리는 일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지만, 이같은 정보가 한데 모이고 잘 다듬어져 A씨의 소중한 발로 거듭난 것처럼 말이다.
정부는 물론, 경기도에서도 일제히 빅데이터에 주목하는 이유다. 빅데이터 사업은 박근혜 정부가 내세운 '정부 3.0'의 10개 추진과제중 하나로 선정된 데이어, 경기도에서는 남경필 지사의 핵심 공약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다.
경기도의회에서도 지난 7월 전국 최초로 빅데이터 활용에 대한 조례를 발의하는 등 이같은 움직임에 발을 맞추기도 했다.

빅데이터는 방대한 규모의 데이터와 이를 가공할 수 있는 기술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전자기기와 인터넷 등이 발달하면서 수집되는 정보가 늘어나고, 여러 기술을 통해 이전에는 가공이 어려웠던 정보들을 다각도로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빅데이터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정보사회 진입이 이뤄진 2000년대 말부터 데이터를 수집하고 활용하는 일이 수익·가치를 창출해내는 사례가 이어지면서, 빅데이터는 새로운 성장의 동력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2008년 미국 대선 당시 오바마 민주당 후보는 유권자의 과거 투표 여부·구독하는 잡지·마시는 음료 등 다양한 형태의 유권자 관련 정보를 수집해 '유권자 지도'를 구축, 지역별 맞춤형 선거운동으로 눈길을 끌었고 세계 최대 규모의 인터넷 서점 아마존닷컴과 검색사이트 구글은 이용자들의 구매·검색내역을 데이터베이스화해 이들의 취향과 관심사를 분석, 추천상품과 맞춤형 광고를 제시해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
전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정치·경제계 인사들의 회의기구인 '세계경제포럼'이 2012년 '떠오르는 10대 기술'중 첫번째로 빅데이터를 꼽고, 미국의 시장조사기관 가트너가 빅데이터를 '21세기 원유'에 빗댄 이유다.
우리나라에서도 공공·민간분야 할 것 없이 빅데이터를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 카드업계가 대표적이다. 신한카드가 지난해말 업계 최초로 빅데이터 센터를 설립하며 불씨를 당기자, 삼성카드도 지난달 해외 빅데이터 전문가를 대거 영입하며 대응에 나섰다.
카드 이용객의 소비성향 등을 분석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보다 효과적인 고객관리를 위해서다. 앞서 BC카드는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과 함께 카드 거래 내역과 부동산 가격·점포 이력 등 7억4천건의 데이터를 수집·분석해 예비창업자와 소상공인에게 창업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지원 시스템을 구축하기도 했다.
'쓸 곳은 많고 쓸 돈은 없는'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빅데이터는 한정된 예산 안에서 최대한 빠르게 주민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모든 주민에게 행정서비스를 지원하는 것이 아닌, 필요한 주민에게만 맞춤형으로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효과는 높이고 돈은 절약할 수 있는 것.
서울시의 올빼미버스가 호응을 얻은 점도, 경기도 등 전국 광역단체가 잇따라 행정서비스와 빅데이터를 연계 시도하는데 한 몫을 했다.
# 경기도의 힘 '빅파이'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후보 시절부터 빅데이터를 활용한 도정 운영을 핵심공약으로 강조해 왔다.
빅데이터(BIG data)를 이용해 재난안전·치안·교통·일자리 제공 등 분야별 맞춤형 행정 서비스를 주민에게 무료로 지원(Free-Information)하고, 이를 제공할 전문인력 등을 고용해 일자리 7만개를 창출하겠다는게 '빅파이(BIG-FI) 프로젝트' 공약이다.
당선후 인수위원회 격인 혁신위원회에서 제일 먼저 논의가 이뤄진 데 이어 실제 추진을 위한 TF팀도 민선 6기 출범 직후 곧바로 구성돼 활동을 시작하는 등 남 지사의 굵직한 공약사업중에서는 가장 빠르게 속도를 내고 있다.
빅데이터 활용에 대한 남 지사의 의지가 담긴 행보라는 분석이다.
서울시 등에서 특정사업을 위해 빅데이터를 유용한 도구로 활용해 왔다면, 경기도의 '빅파이'는 빅데이터를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는게 차이점이다.
기존 빅데이터 사업이 '정보의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아주는 일에 초점을 맞춰 왔다면, '빅파이'는 궁극적으로 도민들 누구나가 원하는 물고기를 스스로 잡을 수 있도록 배와 낚시도구를 만드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는 얘기다.
컨트롤타워와 권역별 데이터밸리를 구축하고 인력풀을 만들겠다는게 '빅파이'의 세부 추진사업으로 제시된 것도 이와 맥이 닿아있다. 도가 '정보의 바다'에 어떤 물고기가 살고 있는지, 이를 어떻게 잡아 요리할 수 있는지 가닥을 잡는데만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는게 중론이다.
기업가들과 학계, 해외 전문가까지 총출동한 빅파이 TF팀이 지난 7월 8일 이렇다할 결론없이 첫 회의를 마친 이유이기도 하다.
동시에 기존 행정서비스와 빅데이터를 연계해야한다는 요구에도 직면해있다. 경기도 스스로도 물고기를 낚아올려야한다는 것이다.
세월호 침몰사고로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재난안전문제를 빅데이터를 통해 관리해야한다는 목소리가 거세고, 입석금지 등으로 촉발된 광역버스 문제 등도 빅데이터로 교통수요를 조사한후 맞춤형 공급을 통해 효과적으로 풀어내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실정이다.

도 관계자는 "도 관계자들에게도, 도민들에게도 아직까지 빅데이터는 생소한 개념이지만, 빅데이터의 활용가치를 주목하는 시선과 이에 대한 수요는 점점 늘고 있는 실정"이라며 "졸속으로 흐르면 아무런 성과없이 끝날 수도 있는만큼, 뭔가 해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진·강기정기자
그래픽/박성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