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8월현재 600만명 넘어서 '사상 최고'
양날의 칼로서 가공할 폭발력 지닌 '시한폭탄'
소비부진→저성장→고용불안심화 '빈곤 악순환'


금년 달력도 마지막 한 장 남았다. 내년도 국내외 경제에 눈길이 가나 장밋빛 전망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지난 4분기 연속 '0%'대의 저성장을 지속해온 터에 생계형 대출마저 증가하는 추세인데 수출여건도 신통치 못하다. 내외수 성장세가 동반 약화되면서 저성장이 장기화할 우려마저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정부의 을미년 4%성장 호언이 메아리처럼 들린다. 저임금의 비숙련 노동이 주목된다. 마른수건 짜기가 재연될 조짐이 큰 탓이다.

국내의 임금근로자 총수 대비 비정규직의 비중은 32.4%로 약간씩 줄어드는 추세이나 그 숫자는 점차 불어나 올해 8월 현재 사상 최고인 600만명을 넘어섰다. 1년만에 13만명이 증가한 것이다. 노동계에서는 임시직·일용직 등을 포함할 경우 경제활동인구의 30%를 훨씬 능가하는 840만명으로 추산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정규직 반드시 해소'공약에 역행하는 결과여서 눈길이 간다.

정규직과의 소득격차 확대는 설상가상이다. 고용노동부가 3만1천663개 표본사업체 소속 근로자 82만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정규직과의 임금격차는 2008년 134만9천원에서 작년 298만5천원으로 5년만에 무려 2배이상 벌어졌다. 2013년 비정규직의 평균임금은 정규직의 47.0%에 불과했다. 퇴직금과 상여금, 시간외 수당 등은 물론 사회복지 혜택까지 축소중인데 물가상승을 감안하면 비정규직들의 수입은 더욱 낮아진다. 장기간의 저성장에다 간접노동 확산도 한몫 거들었다.

파견·업무위탁·노무도급·사내하청·외주·분사·근로자공급 등으로 근로자들을 실제 사용하는 사업주는 근로조건 등 일체의 지배력을 행사하면서도 제도적으론 법적 고용주가 아니라는 이유로 면책특권을 누린다. 1998년 IMF사태 이후 비숙련의 상시지속업무를 아웃소싱으로 전환하면서 작금 '단가 후려치기'는 예사며 '10년을 일해도 신입사원'들이 양산되고 '바지사장'도 성업중이다. 지난달 20일 새정치민주연합 이석현 국회의원의 분석에 의하면 비정규직 근로자를 고용중인 사업장 3곳중 1곳에서 비정규직을 차별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차별개선을 위한 정부의 노력 또한 줄고 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헛구호일 뿐이다.

정규직으로의 전환율이 매우 낮은 것은 또 다른 주목대상이다. 지난 10월26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영국·독일·프랑스·네덜란드·일본 등 16개국을 대상으로 한 '2013년 비정규직 이동성 국제비교'에서 한국은 정규직 전환율이 선진국중 가장 낮은 국가로 자칫 수많은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열악한 일자리의 덫(trap)에 걸릴 위험이 매우 높다고 경고했다.

1990년대말 버블붕괴를 계기로 평생직장은 빠르게 위축됐다. 기업들은 재무지표 개선이란 소기의 성과를 거뒀으나 임금수준이 정규직의 절반에 불과한 비정규직이 대량발생하면서 민간소비는 서서히 둔화됐다. 수출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구조로 변질됐으나 2008년 미국의 비우량채권사태를 계기로 다시 나락으로 떨어졌다. 고용불안의 망령은 청년들의 자립의지 위축 내지는 출산율의 확대재생산을 결과해서 고령화를 더 촉진했다. 계층간·세대간 갈등우려는 또 다른 고민이다. 종신고용의 나라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이야기다.

비정규직 문제는 양날의 칼로서 가공할 폭발력을 지닌 시한폭탄이다. 비정규직→소비부진→저성장→고용불안 심화 등 빈곤의 악순환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해소가 현안이나 가격기구를 통한 자율적 해결은 난망이다. 국제공조를 통한 비숙련노동문제 청산을 주문한 미국 미네소타대학의 에단 켑스타인 교수는 "정부는 고용불안 노동자들이 변화하는 경제상황에 적응하도록 도와줄 책임이 있다"고 역설했다. OECD는 총수요진작을 위해서라도 각국 정부들이 비정규직 축소에 팔을 걷어붙일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경제 불확실성이 커 고용불안은 더 위력을 발휘할 수도 있어 보인다.

끓는 냄비 속 개구리를 닮아가는 것 같아 걱정이다.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