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형건물 스크린 삼아 천변만화 풍경 재현은?
쇠퇴 구도심 새로운 관광자원 되지 않을까
비현실적인 이야기나 토대가 취약한 사물, 근거가 없는 말을 가리킬 때 흔히 사상누각(砂上樓閣), 혹은 공중누각(空中樓閣)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사상누각이나 공중누각이라는 말은 모두 신기루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신기루는 바다나 사막에서 먼 곳에 있는 물체가 공중에 떠올라 보이거나 거꾸로 비쳐 보이는 현상이다. 신기루의 다른 명칭은 해시(海市)인데, 일본에서는 '나고노 와다리' 혹은 '하마소비'라고 부른다. 신기루라는 명칭을 보면 신(蜃) 대합이나 이무기를 말한다. 고대인들은 이 풍경들이 거대한 조개나 이무기가 뿜어낸 입김이 누대나 성곽의 형상을 나타낸다고 믿었던 모양이다. 영어로는 미라지(mirage)인데 사물을 비춰주는 거울(mirror)이라고 여겼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 기묘한 현상이 빛의 굴절현상 때문에 발생한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규명한 사람은 수학자 G.몽지만이다. 신기루는 지표나 수면 부근의 대기와 그것에 접한 대기 간에 기온 차가 클 경우, 두개의 서로 다른 기온층 사이를 빛이 통과할 때 굴절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신기루 발현 장소는 중국 산둥성 옌타이의 펑라이거(蓬萊閣) 앞바다와 이탈리아 메시나 해협이다. 펑라이거 앞바다의 신기루는 주로 늦은 봄과 여름 사이에 나타나는데 서너시간 계속되며 거대한 배나 다리·산·도시 모습으로 바뀌는 대장관을 연출한다고 한다. 봉래각 신기루가 나타날 때면 이 광경을 보러 수많은 구경꾼들이 몰려든다고 한다. 이탈리아 메시나해협에서는 공기의 온도가 높아지고 물이 잔잔해지면, 구름위로 아름답고 웅장한 항구도시의 모습이 반영되고, 다시 그 위에 제2, 제3의 도시가 솟아올라 현란한 탑이나 화려한 궁전같은 장관이 겹겹이 펼쳐진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천 앞바다가 유명한 신기루 발현처였지만 잊혀진지 오래다. 월미도 왼편 해상의 수평선에는 봄철 바람이 없는 날이면 섬모양, 커다란 선박이나 건축물 모습이 마치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출현했다는 1930년대 신문기사에서 종종 보인다. 고려시대 문호인 이규보의 수필 '계양산에서 바다를 보다'를 보면 '산에 올라 조수가 밀려오는 것과 해시(海市)의 변괴를 구경했다는 언급이 나오는데, 당시에도 인천의 신기루는 큰 구경거리였음을 알 수 있다.
신기루가 부정적 의미로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상상적 신기루의 산물이라할 수 있는 판타지는 문학이나 음악·영화의 한 장르로 분류되고 있을 만큼 많이 창작되고 대중적 인기가 높다. 오랫동안 민속놀이로 이어져온 불꽃놀이나 그 현대적 재현인 불꽃축제는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신기루라 할 수 있다. 신기루나 불꽃놀이의 매력은 환상적 풍경이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일 것이다. 신기루는 홀연히 나타나 짧은 시간동안 유지되다가 사라지는 아름답고 환상적인 일이나 현상이다. 바로 출현의 의외성과 순간성, 비현실적 환상적 아름다움이 신기루와 판타지의 매력인 셈이다.
뜬금없이 신기루 타령을 하는 것도 신비로운 자연현상이 사라진 것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그 현상의 발현처인 월미도나 인천 내항 일대의 문화 콘텐츠로 재현할 수 없는가 하는 발상 때문이다.
신기루를 다시 볼 수 없다면 인천의 축제프로그램으로 월미도 해상에 인천의 신기루를 재현하는 해상 레이저 쇼 같은 건 어떨까? 아니면 대형 건축물을 스크린 삼아 미디어 파사드(media facade)를 설치해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풍경을 디지털로 재현한다면 쇠퇴하는 구도심의 새로운 매력물이 되고 관광자원이 돼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신기루 같은' 생각은 또 어떨까.
/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