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 산업은 영화·드라마를 넘어 공연·축제까지 급속하게 확장하고 있다. 미국 토니상을 휩쓴 한국의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대표적 사례다. 음악·공연 관광시장은 2024년 약 6조원에서 2033년 약 31조4천억원 규모로 연평균 20%씩 성장할 전망이다. 정부는 ‘K-컬처 300조원 시대’를 국정과제로 설정했다. 장밋빛 전망과 달리, 공연예술 현장은 여전히 열악하고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현장의 목소리가 그렇다. 문제는 ‘인력난’이다. 특히 연기자, 연주자 등 공연 출연진 뒤에서 무대를 완성하는 ‘무대예
인천민예총 강화지회와 전교조 강화지회가 해마다 발행하는 잡지 ‘강화시선’ 제17호(2025~2026)에서는 초대형 개발 프로젝트 ‘강화남단 경제자유구역’을 주제로 한 글들이 눈에 띕니다. 강화도 남단 경제자유구역은 화도면, 길상면 일원 6.32㎢에 총 3조1천억원을 투입해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는 대규모 산업시설과 상업·업무시설, 주택단지, 공원 등을 조성하는 개발 프로젝트입니다. 계획 인구 2만9천여명(1만2천여가구) 규모입니다. 인천시와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인천의 핵심 현안으로 추진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사업 추진 과정과 사업성 등
많은 이들이 밤하늘의 별을 더욱 또렷하게 관측하기 위해 도심을 벗어나 산으로 올라가고는 한다. 밤에, 자연의 빛을 가까이하기 위해서는 인공의 빛을 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러 천문대가 산 정상에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강화도 하점벌판은 산에 오르지 않고서도 육안으로 밤하늘의 별을 손에 잡을 듯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성지’로 꼽힌다. 북쪽으로는 별립산과 봉천산이 장막을 치고, 남으로는 고려산 줄기가 막아서 인공의 불빛이 끼어들 여지가 적은 곳이다. 그 하점벌판 위쪽에 강화천문과학관이 자리잡고 있다. 폐교한 강후초등학교 자리에
대전 지역 극단이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초토화된 월미도 주민들의 희생에 대한 이야기를 연극으로 제작했다. 인천도 아닌 대전에서 왜 이 사건을 무대에 올렸을까. 대전광역시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극단 ‘토끼가 사는 달’은 지난달 26~28일 대전 이음아트홀에서 연극 ‘REMAIN’을 공연했다. 이 작품은 월미도에서 홀로 두 남매를 키우던 남우의 가족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전쟁이 발발하자 불안과 일시적 안정 사이에서 일상을 보내던 남우 가족과 월미도 마을 공동체는 인천상륙작전 당시 월미도에
인천 중구 개항장거리에 있는 도든아트하우스는 오는 30일까지 개관 6주년 기념 ‘신년 초대전’을 진행 중이다. 도든아트하우스는 지난해 개최한 40여 차례의 전시를 돌아보고, 성찰을 통해 새해를 설계한다는 취지로 이번 전시를 마련했다. 참여 작가는 지난해 도든아트하우스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던 강형덕, 김건환, 김정열, 박기훈, 박동진, 박창수, 신찬식, 양창석, 오병진, 오성만, 우창훈, 윤정호, 이동하, 이반디, 이소영, 이아영, 정승환, 조병완, 최인환이다. 도든아트하우스는 원로·중진 작가부터 신진·청년 작가, 수묵화를 비롯한 한국
인천 강화도를 거점으로 독창적 작품 세계를 구축해 온 이탈(LEE Tal) 작가가 ‘제15회 한국미술평론가협회 작가상’을 수상했다. 한국미술평론가협회는 제15회 한국미술평론가협회 작가상 수상자로 이탈 작가를 선정했다고 12일 밝혔다. 이탈 작가는 1990년대 초부터 30여 년 동안 회화, 설치, 비디오, 퍼포먼스 등 다매체적 실험을 전개해 왔다. 예술의 근원적 의미, 예술과 사회 관계에 대한 존재론적 사유를 기반으로 우리 문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적 메시지를 던져 왔다는 평가를 받는 작가다. 이탈 작가는 1996년 대한민국 청년미술
“저는 신진자동차, 새한자동차, 대우자동차, 지엠대우를 다 겪었는데 그중에서도 차도 좋고 잘 팔리던 신진자동차 시절이 가장 애정이 가요. 내 고장에서 만든 차를 인천시민이 많이 사줘야 하고 내 고장에서 큰 기업이 잘 살아남도록 모든 면에서 협조해 주는 게 후세들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원들도 사기 잃지 말고 열심히 일해서 좋은 회사 만들어 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946년생 원영의(1966~2007년 재직)씨가 평생 직장이었던 ‘인천의 자동차 공장’에 대한 구술 작업에서 막바지에 말한 자신의 바람이다. 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