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인천 SK와 수원 KT의 개막전이 펼쳐진 지난 23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 이날 오전 한때 천둥·번개를 동반한 진눈깨비까지 쏟아지는 꽃샘추위 속에서도 2만1천900여 명에 달하는 야구팬이 들어찼다. 정오가 되기 전만 해도 우천 등으로 인한 경기 취소가 예상될 만큼 궂은 날씨였다. 하지만 이내 하늘은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 거짓말처럼 화창해졌다.

'디펜딩 챔피언' SK는 홈 개막전을 맞이해 한국시리즈 MVP 한동민과 주장 이재원이 우승 트로피를 들고 입장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SK는 '에이스' 김광현을 선발로 내세워 홈 개막전 승리의 강한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승리 투수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무명의 늦깎이 신인' 하재훈이었다.

그는 7회 초 김광현을 대신해 마운드에 올라 시속 150km를 넘나드는 강속구를 앞세워 1이닝 무피안타 1탈삼진 무실점의 완벽투로 인상적인 데뷔 무대를 선보였다. 

하재훈은 지난 시즌 '괴물 신인'으로 불린 강백호를 삼진으로 막아내고 로하스를 2루수 플라이로, 유한준까지 좌익수 뜬공으로 돌려세우며 KT 중심타선을 삼자범퇴로 처리했다. 그가 경기 직후 결승 홈런의 주인공인 4번 타자 로맥 등과 함께 응원 단상에 오르자 팬들이 일제히 열광했다. 하재훈은 "데뷔 첫 등판에서 승리를 거두는 영광을 안아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하재훈은 '사연이 많은' 선수다. 미국과 일본 프로야구에 도전했다가 뒤늦게 한국으로 돌아온 30세 중고 신인. 2008년 시카고 컵스에 입단한 뒤 2013년 마이너리그 트리플A까지 올랐지만 끝내 빅 리그의 꿈을 이루지 못했고, 이후 일본 무대에서도 빛을 못 봤다. 하재훈은 원래 외야수였다. 그러나 SK는 2019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2라운드 16순위로 '투수 하재훈'을 지명했다. 어안이 벙벙했을 그였다. 염경엽 SK 감독이 올 시즌 '필승조'로 그를 눈여겨보고 있다. 

/임승재기자 is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