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생태원 검은머리갈매기 서식지 확인5
풀이 거의 나지 않는 평지에 둥지를 트는 습성을 갖고 있는 검은머리갈매기(멸종위기야생동물 2급)가 번식을 하기 위해 찾아오는 인천시 연수구 인천항 크루즈터미널 일대가 갈대와 잡초들로 무성해 유일하게 남은 서식지가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2022.2.14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멸종위기야생동물 2급인 검은머리갈매기가 개발사업과 서식지 관리 부실로 갈 곳을 잃고 있다.

지난 11일 경인일보는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 권인기 조류팀장, 황종경 연구원과 동행해 검은머리갈매기 서식지인 인천 연수구 인천항 크루즈터미널 인근 공터를 찾았다. 지난해 2천여 마리의 검은머리갈매기가 번식한 이 일대가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인천항만공사(IPA)가 소유한 3만㎡ 규모의 이 공터에는 갈대와 잡초가 성인 남성 허리 높이까지 자라나 있었다. 검은머리갈매기들이 지난해 만들었던 둥지에 번호표를 달아놓았는데도 그 흔적을 찾기 힘든 상황이었다.

작년 만들었던 둥지에 '번호표'
토양 염분 빠져 갈대·잡초 무성
환경에 '예민' 다른 곳으로 떠나


권 팀장은 "검은머리갈매기는 풀이 거의 나지 않는 평지에 둥지를 만들어 알을 숨기는 습성을 갖고 있다"며 "번식 환경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이곳처럼 갈대나 잡초가 높게 자라면 둥지를 만들 수 없다고 판단해 다른 곳으로 떠난 뒤 돌아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전 세계 1만4천여 마리가 있는 것으로 추산되는 검은머리갈매기는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야생동물 2급 생물이다. 매년 3월 말부터 한국을 찾는다는 검은머리갈매기 2천여 마리의 95% 정도는 송도국제도시로 날아와 둥지를 튼다.

지난해 4월과 비교하면 갈대와 잡초가 1년 만에 크게 자라난 상황이라고 권 팀장은 말했다. 2년 전 공터 매립 당시 토양에 쌓여있던 염분이 빠지면서 갈대와 잡초가 자랄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인천항만공사 관계자는 "이렇게 풀이 자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며 "제초 작업 등 공터 환경을 개선하는 방안에 대해 내부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검은머리갈매기 DB
풀이 거의 나지 않는 평지에 둥지를 트는 습성을 갖고 있는 검은머리갈매기(멸종위기야생동물 2급)가 번식을 하기 위해 찾아오는 인천시 연수구 인천항 크루즈터미널 일대가 갈대와 잡초들로 무성해 유일하게 남은 서식지가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2022.2.14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또 다른 둥지 터에는 새끼로 보이는 부패한 검은머리갈매기 사체가 있었다. 너구리나 길고양이 같은 육상 동물에게 습격을 당한 것으로 추정됐다.

황 연구원은 "검은머리갈매기들은 주로 갯벌 주변 습지에 둥지를 만들기 때문에 육상 동물의 습격을 받는 경우가 드물다"며 "습지가 사라지면서 육지와 연결된 곳에 알을 낳다 보니 육상 동물의 공격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육상 동물에 습격당한 흔적도
작년 부화 30%만 국내외 이동
"제초 등 공터환경 개선 필요"


검은머리갈매기의 생존 환경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서식지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데다, 각종 개발사업으로 그나마 있던 서식지도 잃어가고 있어서다. 국립생태원은 지난해 이곳에서 부화한 새끼 검은머리갈매기 2천여 마리 중 끝까지 생존해 월동지인 남해안이나 일본, 중국 등지로 이동한 개체는 30%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 있다.

황 연구원은 "검은머리갈매기는 최대 2㎞ 간격을 띄어두고 둥지를 만들지만, 이곳은 면적이 좁다 보니 둥지가 밀집해 있어 너구리 한 마리에 여러 둥지가 피해를 보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며 "서식 공간이 줄면서 번식 확률도 낮아지고 있다"고 했다.

검은머리갈매기가 주로 번식하는 이 일대도 개발계획이 잡혀있다. 언젠가는 이 서식지도 잃게 될 것이란 의미다.

권 팀장은 "둥지를 틀 수 있도록 환경을 정비하지 않으면 국내에서 검은머리갈매기가 머물 곳은 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기존 서식지를 제대로 관리하고, 검은머리갈매기들이 서식할 수 있는 대체 부지를 확보하는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달수기자 dal@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