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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출신의 거장 라파엘 쿠벨리크가 베를린 필하모닉과 연주한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음반 표지.

철도의 시원은 19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20세기를 거쳐 21세기까지 철도는 근대 문명과 진보의 상징이다. 철도를 소재로 한 흥미로운 음악과 에피소드도 많은데, 체코 출신의 작곡가 안토닌 드보르자크(1841~1904)는 '기차 마니아'의 원조 격이다.

드보르자크는 9세 때 프라하 인근의 완공된 철길로 쏜살같이 지나가는 열차를 보았다. 기관차의 육중한 외관과 빠른 속도,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 등은 어린 드보르자크에게 큰 충격을 줬을 것으로 보인다. 성인이 된 드보르자크는 아침마다 프라하 역에 나가서 기차를 관찰하고, 노선과 기관차의 특징을 살폈다. 기관사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훗날 프라하 음악원의 교수가 되어서 제자들을 지도했던 드보르자크는 예정된 시각에 기차가 역에 도착하지 않으면 제자를 보내서 해당 열차가 왜 연착하는지를 알아오게 했을 정도였다.
기관차를 내가 발명할 수 있었다면, 내가 쓴 교향곡 전부를 포기해도 좋을 텐데

드보르자크는 훗날 제자에게 반농담식으로 "기관차를 내가 발명할 수 있었다면, 내가 쓴 교향곡 전부를 포기해도 좋을 텐데"라고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신세계로부터' 마지막 악장 도입부, 증기 기관차 소리서 모티브

드보르자크의 대표작이랄 수 있는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이하 '신세계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을 여는 힘찬 도입부는 증기 기관차의 발차 소리에서 모티브를 얻어서 작곡되었다고 한다. 이 도입부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연출하고 존 윌리엄스가 음악을 맡은 영화 '죠스'(1975년)의 테마음악과 유사한데, 먹잇감을 감지하고선 서서히 속도를 높여서 목표물에 접근하는 식인 상어의 움직임과도 어울린다.

마지막 악장 도입에 이어지는 1주제는 트럼펫과 호른에 의해 당당하게 표출된다. 제목은 모를지라도 '아하! 이 음악'이라고 외칠 부분이다. 일전에 응원가로 목청껏 외친 선율이다.

'신세계 교향곡'의 2악장은 '망향의 노래'로 알려져 있다. 이 악장의 주 선율을 따서 만들어진 노래 '고잉 홈(Going Home)'도 유명하다. 또한 '신세계 교향곡'의 2악장은 영화 '암살'(2015년)에도 쓰였다. 해방 후 김구(김홍파 분)와 김원봉(조승우 분)이 독립을 위해 헌신한 투사들을 기리는 대목에서 음악이 어우러진다.

드보르자크는 프라하 교외의 푸줏간과 여관을 겸하는 집에서 태어나서 자랐다. 부모는 드보르자크가 도축자격증을 따서 가업을 물려받길 원했다. 그러나 그는 부모의 바람과 달리 16세에 프라하 음악원에 입학해 음악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드보르자크는 항상 돈이 부족해 비올라를 비롯해 여러 악기들을 연주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그러나, 작곡에 대한 꿈을 잃지않았다.

드보르자크는 31세에 체코의 위대한 작곡가인 스메타나에게 발탁됐으며, 후에 브람스가 그를 세상에 소개하기도 했다. 체코와 오스트리아를 넘어서 유럽 전역에서 명성을 떨친 드보르자크는 50세에 프라하 음악원의 교수가 된다. 그러나, 이듬해 미국 뉴욕 내셔널음악원 측의 요청으로 음악원의 원장으로 부임한다. 이후 3년 동안 내셔널음악원을 이끌면서 미국 생활을 하게 된다. 이 시기에 드보르자크의 대표작들이 세상에 나오는데,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고 영감을 받아 작곡했다는 '첼로 협주곡'을 비롯해 '현악 4중주, 아메리카', 그리고 '신세계 교향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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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닌 드보르자크

아마도 드보르자크의 세 걸작은 작곡가가 미국에 가지 않았다면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시기 작품들이 흑인과 인디언 음악의 선율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즉 '신세계 교향곡'은 드보르자크가 기존 작품들에서 보여줬던 '전원풍의 체코 스타일'에 흑인과 인디언 음악 등 미국적 요소들이 어우러져 탄생했다.

작품의 정식 명칭인 '신세계로부터(From the New World)'에서 알 수 있듯이 단순히 신세계인 미국의 인상을 표현한 작품이 아닌, 미국에서 고향을 그리는 작품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작품은 1893년 12월 뉴욕 필하모닉에 의해 초연됐다. 초연 무대는 대성공을 거뒀다고 한다.

'신세계 교향곡'은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 만큼이나 연주자의 면면이 다채롭다.

'신세계 교향곡'의 최고 연주로 많은 애호가들이 바츨라프 탈리히와 이스트반 케르테츠의 연주를 꼽는다. 작곡가와 같은 체코의 거장인 탈리히는 1919년부터 1941년까지 22년간 체코 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로 있으면서 악단의 수준을 극대화했다. 탈리히의 '신세계 교향곡'은 4종이 있는데, 그 중 마지막인 1954년 녹음(수프라폰)이 최고로 꼽히며 70년 가까이 지난 현재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헝가리 태생인 케르테츠가 빈 필하모닉과 함께 한 1961년 녹음(데카)을 최고로 꼽는 이들도 많다. 60년 전 녹음이지만, 좋은 음질과 함께 오케스트라의 기민함을 한껏 활용해 가속과 감속을 요소요소에 효과적으로 사용한 지휘자의 명민함과 담대함이 돋보인다.

또한, 체코 필하모닉의 연주와 여타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비교해서 들어본다면, 앞서 드보르자크의 작풍으로 언급한 '전원풍의 체코 스타일'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인천본사 문화체육레저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