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리우드 스타 윌 스미스가 아카데미상 수상과 동시에 영화계에서 퇴출될 위기에 처했다. 전세계에 생중계된 시상자 폭행 사건의 파문이 진정될 기미가 안 보여서다. 스미스는 시상식 다음날 "어젯밤 시싱식에서의 내 행동은 용납할 수 없고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아카데미측에 사과했다. 피해자인 크리스 록에게도 "내가 선을 넘었고 내가 틀렸다.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싶다"고 용서를 구했다.
거의 백기선언에 가깝다. 하지만 할리우드 동료들의 반응은 차갑다. 원로 여배우 미아 패로는 "오스카의 가장 추악한 순간"이라고 치를 떨었고, 배우 짐 캐리는 "윌 스미스가 바로 경찰에 체포돼야 했다"고 분개했다. 스미스의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취소와 아카데미 회원 자격 박탈마저 거론된다. 윌 스미스는 배우 인생의 가장 빛나는 순간에 스스로 지옥문을 열어젖힌 셈이다. 영화 같은 반전이다.
명성을 회복해가던 아카데미도 치명상을 입었다. 흑인 스타들은 2016년 아카데미 시상식 참석을 거부했다. 백인 위주의 '화이트 아카데미'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윌 스미스와 아내 제이다 핑킷도 앞장섰고 많은 백인 배우들도 동참했다. 아카데미도 정신을 차렸다. 이후 흑인과 외국인 배우에게 문호를 개방했다. 봉준호의 '기생충' 신화와 윤여정의 여우조연상 수상의 바탕이 됐다.
올해는 청각장애인 배우를 남우조연상 수상자로 결정해 문호를 더욱 확대했다. 시상자로 무대에 선 윤여정의 품격과 배려는 감동적이었다. 폭행 사태만 아니었으면 아카데미의 명성을 완전히 회복할 수 있었던 시상식으로 기억될 뻔했다. 이 모든 것을 크리스 록의 모욕성 농담과 윌 스미스의 야만적인 폭력이 날려 버렸다. 2016년 아카데미를 각성시킨 윌 스미스가 2022년 아카데미를 파탄냈으니 공교롭다.
스미스가 시상식에서 크리스 록과 아카데미에 진심으로 사죄했다면 지금과는 상황이 달랐을지도 모른다. "네가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그 순간, 조심해. 그때가 바로 악마가 너에게 찾아오는 거야." 스미스가 수상 소감에서 밝힌 덴젤 워싱턴의 충고다. 대배우의 연륜이 빚어낸 보약 같은 조언이었지만 윌 스미스에겐 사후약방문이니 안타깝다. 그래도 가장 높은 곳에 오른 사람들이 가슴에 새겨야 할 경구로 손색이 없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