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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대한민국 헌법 제11조 1항. 사람은 저마다 나이, 직업, 터전 등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간다. 가지각색 정체성이 비합리적인 이유로 차별받지 않도록 헌법은 '평등권'을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퀴어는 '평등권'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리곤 한다. 퀴어 정체성을 드러내는 순간, 특별한 이유가 없는데도 차별받아야만 하는 상황이 '일상'이 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을 보호해 줄 최소한의 법적 수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예림(활동명·21)씨는 지난 5월 있었던 일만 떠올리면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우리는 평등으로 간다!'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누군가로부터 난도질당해 갈기갈기 찢어진 것이다. 퀴어 동아리 '외행성'이 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벌 캠퍼스 기숙사 근방에 걸어놨던 현수막이다.

퀴어인 A(20대)씨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에 빗대어 퀴어 동아리에 얽힌 이야기를 털어놨다. "너희는 무슨 동아리에서 만났어?"라는 비(非)퀴어 친구의 질문에 차마 '퀴어'라는 두 글자를 말할 수 없어 순간적으로 "우리 '제철 과일 먹기' 동아리에서 만났어"라고 실언을 해버렸다는 것이다.


정체성 드러내는 순간 차별 경험
자신도 모르는 새 행동 검열·위축


퀴어가 마주하는 일상 곳곳엔 차별과 혐오가 서려 있다. 이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행동 하나하나를 검열하고 위축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혐오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이들 존재를 위협한다. 대학생 익명커뮤니티 애플리케이션 '에브리타임'에는 익명을 무기로 혐오 발언을 쏟아내는 게시글과 댓글이 종종 올라온다.

경희대학교 국제 캠퍼스 퀴어 동아리 아쿠아 회장 B(22)씨는 "인권주간 같은 행사가 있는 기간에는 악성 댓글이 더 많아진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무서워서 동아리 홍보글을 올린 뒤에는 아예 에브리타임에 안 들어가고 그랬어요. 이젠 너무 익숙해져서 '너희는 너희 대로 살아라…' 이런 느낌으로 덤덤해진 면이 있죠." B씨는 익숙한 일이라는 듯 무덤덤하게 답했다.

류세아 정의당 경기도당 성소수자위원회 위원장도 유사한 문제의식을 털어놓았다. MTF로 정체화한 류 위원장은 "1대 1로 마주할 때는 혐오 표출을 하진 않는다. 다만 퀴어 인식 개선 활동 같은 캠페인을 할 경우 물리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현하는 분들이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지자체별로 인권조례를 둬야 하는데, 현재 인권조례가 없는 곳이 훨씬 많다"고 지적했다.

실제 경기도내 31개 시·군 중 인권조례를 제정한 곳은 절반이 채 안 되는 13개 지역뿐이다. 인권조례는 주민들이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보호받고 이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이다. 수원, 광명, 부천, 구리 등이 인권조례가 있는 대표적인 지자체다. 류 위원장은 "수원과 광명이 모범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서울퀴어퍼레이드 (37)
16일 오후 서울 중구 시청광장에서 열린 제23회 서울퀴어문화축제에 많은 인파가 모인 모습. 2022.7.16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도내 '인권조례' 기초단체 13곳뿐
'차별금지법'은 국회 문턱 못넘어


정의당 경기도당 성소수자위원회에서 발간한 '성평등 사회를 위한 정책자료집'을 살펴보면 수원시와 광명시는 인권조례에 '인권위원회 설치 근거 적시, 인권위원회 설치 의무, 인권센터 설치 근거, 인권센터 설치 의무 조항'을 모두 담았다. 인권위원회는 심의를, 인권센터는 상담을 해주는 일종의 구제 기구다.

다만 인권조례는 상위법인 법령에서 금지하는 행위를 규정할 수는 없다. 인권조례 상위법으로는 차별금지법이 있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류 위원장은 "상위법 자체가 아예 없는 상황이다. 일본처럼 지방자치가 발달 된 나라는 상위법이 없어도 지역에서 혐오 금지라든지 차별금지법 같은 인권 관련 조례를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고 짚었다.

현재 차별금지법은 국회에 계류 중이다.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한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차별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구제할 것인지를 현실화한 법이다. 누군가를 처벌하기 위한 것이 아닌 대화하기 위한 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차별금지법 통과는 성소수자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가졌던 분들도 차별 없이 살아가는 삶을 인정할 수 있도록 변화를 이끌어 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 관련기사 3면([통큰기획-가장 보통의 사람, 퀴어·(下)] 지방에도 무지개는 뜬다)

/신지영·이시은·유혜연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