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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생을 의롭게 살며 전문 간호직에 최선을 다할 것을 하느님과 여러분 앞에 선서합니다. 나는 인간의 생명에 해로운 일은 어떤 상황에서나 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간호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전력을 다하겠으며 간호하면서 알게 된 개인이나 가족의 사정은 비밀로 하겠습니다. 나는 성심으로 보건의료인과 협조하겠으며 나의 간호를 받는 사람들의 안녕을 위하여 헌신하겠습니다."

간호학도들이 임상수업을 나가기 전에 촛불을 들고 가운을 입고 복창하는 '나이팅게일 선서'이다. 영국 명문가의 막내딸인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집안의 반대에도 간호사가 돼 크림전쟁에서 부상병을 간호한다. 늦은 밤 작은 등불을 들고 병동을 순회하는 그녀를 보도한 타임지 기사로 '등불을 든 여인'으로 유명해졌다. 그녀로 인해 병원 잡역부로 취급받던 간호사의 위상이 달라졌다. 나이팅게일 선서는 현대 간호학의 창시자이자 간호사의 대모를 기리려 제정됐다.

2000년부터 해마다 국가고시를 통해 1만명 이상, 2017년부터는 2만명 안팎의 간호사들이 배출돼 의료현장에서 일한다. 간호사는 의사와 동등한 법정 의료인이다. 간호대에 입학하는 남학생 수도 가파르게 증가해 '간호사=여성'이라는 공식이 깨진 지도 오래다. 하지만 간호사를 의사와 환자 수발을 드는 역할로 보는 사회적 편견은 여전하다. 메디컬 드라마나 영화의 주인공도 대부분 의사다. 최근에는 태움 문화로 간호사들 스스로 발등을 찍기도 했다. 간호사를 아가씨, 언니, 저기로 호칭하고 하대하며 막말하는 환자들이 수두룩하다.

간호사 현은경이 7일 안장됐다. 지난 5일 이천의 투석전문병원을 덮친 화마 속에서 투석 중이던 환자 4명의 곁을 끝까지 지키다 같이 희생됐다. 50세의 그녀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홀로 대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투석 치료 중이던 환자들은 두 다리가 없거나 고령자들로 도움 없이는 재앙을 피할 재간이 없었다.

이기심과 이타심 모두 인간의 본성이라지만, 절체절명의 순간에 직면하면 자신의 생존에 집착하기 마련이다. 간호사 현은경은 살 길을 향하려 환자들에게 등을 보이기가 죽기 보다 힘들었을 테다. 나이팅게일 선서대로 환자의 안녕을 위해 헌신했다. 세상이 절망으로 깜깜할 때 '현은경' 같은 사람이 빛을 밝힌다. 나이팅게일이 아닌 '간호사 현은경'을 오래오래 기억해야겠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