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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의 대배우이자 명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한국팬들은 1960년대 서부영화로 인연을 맺었다. 고독한 총잡이로 등장해 악당들을 소탕하는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건맨', '석양의 무법자'였다. 시가를 씹느라 일그러진 입꼬리와 눈매는 사건을 예고하는 복선이자 그의 트레이드 마크.

간간이 TV 영화채널에서 그 시절 이스트우드의 영화를 방영하는데 영 맛이 안 난다. 결정적인 표정 연기가 안개에 가려서다. 흡연장면을 모자이크한 탓이다. MZ세대들이 이스트우드의 시가 장면으로 부모 세대와 공감할 도리가 없다.

방송심의규정 때문이다. 방송으로 미화하거나 조장하지 말아야 할 행위들로 음주, 흡연, 흉기사용 등을 열거해 놓았다. 이 규정이 새로운 안방채널인 '넷플릭스' 등 OTT채널엔 적용되지 않는다. 방송 콘텐츠가 아니라는 이유다. 물론 연령별 시청 등급 표시로 청소년 접근을 막는다지만, 비밀번호를 공유하는 플랫폼의 성격상 무용지물에 가깝다.

넷플릭스 콘텐츠의 선정성이 여론의 도마에 오르는 배경이다. 지난 주말 '정주행' 열기로 뜨거웠던 '더 글로리' 시즌2도 악당들의 엽기와 패륜으로 얼룩졌다. 흡연과 욕설은 예사고, 성적묘사와 가정폭력 수위에 한계가 없었다. 악당의 악행이 심각할수록 복수의 개연성과 쾌감이 강화되는 극적 구조다. 극단적인 대리만족에 취하는 동안, 학폭 피해자 대다수가 '문동은'처럼 할 수 없는 세상은 잊힌다.

시사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신이 배신한 사람들'에 이르면 생각이 더욱 복잡해진다. 다큐가 폭로한 성폭행 전과자이자 피고인 정명석의 만행은 치가 떨린다. 영상과 녹음은 욕지기를 유발한다. 시청자들은 저절로 정명석의 영구 격리와 JMS의 해체에 공감하고, 검찰총장까지 나섰다.

다큐의 의도는 성공했지만, 연출이 독했다. '선생님'을 기쁘게 해드린다며 체모까지 드러낸 전라의 여성들이 등장한 장면이 그랬다. 너무 충격적이라 허무맹랑한 교리와 세뇌에 넘어간 여성들을 탓하는 시청 소감이 적지 않다. 정명석의 악행과 피해자들의 무지가 오버랩된다. 처음부터 의도했는지, 의도치 않은 가해가 발생한 것인지 헷갈린다.

방송사 콘텐츠는 과도한 규제로 현실과 예술을 모자이크하고, OTT 드라마와 다큐는 유료시청을 유지하려 고의적으로 독해진다. 안방극장에서 펼쳐지는 우리 시대의 혼란이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