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을이 온통 검은 깃발 천지야, 부끄럽지도 않나? 매일 아침 사람들이 체포당하고, 검거돼서 처형당하는 마당에 너희는 뭐 연극이나 하면서 놀아보겠다는 거야? 이런 정신 나간 인간들아. 지금 전쟁 중이라는 사실을 잊었어?"
"그럼 전쟁 중이라고 예술을 그만둬야 하나요? 우리도 먹고 살아야 할 거 아닙니까!"
"먹고 살고 싶으면 차라리 땅을 파. 당신들 일은 우리에게 별로 아쉽지 않아! 다른 곳에 가서 연극을 하든지 말든지 해. 여기는 안 돼!"
인천시립극단이 인천 남동소래아트홀 대공연장 무대에 1일부터 3일까지 올린 정기공연 '쇼팔로비치 유랑극단'의 도입부 한 장면이다. 작품 배경은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세르비아 작은 마을 우지체다. 이 마을에 쇼팔로비치 유랑극단이 찾아오고 전쟁 와중에도 공연하려는 극단 배우들과 난리 통에 무슨 연극이냐며 맞서는 마을 사람들과의 갈등을 그린다.
작품은 세르비아 극작가 류보미르 시모비치가 1975년 발표한 희곡으로 이성열 인천시립극단 예술감독 부임 후 올린 첫 정기공연이다. 연출은 이우천이, 드라마투르그는 배선애가, 무대는 박은혜, 조명은 류백희가 맡았다.
전쟁은 마을 사람들이 예술을 정신 나간 이들이 벌이는 놀이나, 먹고사는데 상관이 없는 보잘것 없고 하찮은 것으로 여기게 만들어 버렸다.
특히 "전쟁 중이라고 예술을 그만둬야 하느냐"는 질문과 "먹고 살고 싶으면 차라리 땅이나 파"라는 도입부의 대사는 연극을 감상하는 110분 내내 머리 속을 맴돌았다.
2차 대전 배경… 배우·주민 갈등 그려
코로나 사태 겪은 우리사회 모습 겹쳐
이성열 예술감독 부임후 첫 정기공연
지금은 종착지에 와 있지만 코로나19 때문에 불과 얼마 전까지 수도 없이 많은 공연이 취소됐고, 최근 일어난 참사 때도 공연과 축제가 취소되는 모습을 목격한 터였다.
물론 우리 사회가 겪은 상황이 실제 전쟁과 비교할 바는 아니었음에도 우리는 비슷한 일을 겪어야 했다. 그렇다면 이 땅에 진짜 전쟁이 벌어진다면 어떤 모습이 벌어질까. 작품은 연극과 현실이 결코 다르지 않다고 말하는 듯하다. 오히려 작품 속 현실은 연극보다 더 극적이었다.
마을 주민 '세쿨라'가 누명을 쓰고 잡혀갔다는 소식에 오열하는 다른 주민들, 고문 기술자 드로바츠의 뒤를 밟으며 무언가를 모의하는 주민들, 세쿨라가 알고 보니 한 미망인과 내연관계였다는 사실 등.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 모든 일을 4명의 극단 단원들은 마치 연극을 감상하는 듯 지켜본다.
연극을 보면 어렵지 않게 작품이 주는 '메시지'를 깨닫게 된다. 일상이나 연극이나 그 모든 것이 결국 우리 한 인간의 '삶'이라는 것, 그리고 결코 연극은 멈춰선 안된다는 결론이다.
이성열 예술감독은 취임 직전 인터뷰에서 인천 시민들에게 일용할 양식인 '빵'과 같은 작품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다. 시민 모두가 즐겨 먹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빵 말이다.
이 예술감독은 "맛있으면 '어 이거 괜찮네' 칭찬해 주시고, 맛이 없으면 '왜 맛이 이 모양이야' 욕도 해 달라"며 "한 걸음 한 걸음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