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번식장과 경매장에서 왔습니다] 반려견 전성시대의 그늘·(中)
영국서 6개월 미만 판매금지 法 따와
경매 퇴출-번식·판매 수요감소 취지
법안세부내용 두고 전문가 갑론을박
'한국형 루시법'이라고 불리는 동물보호법 개정안은 영국의 '루시법'에서 이름을 따왔다.
2013년 영국의 강아지 번식장에서 구조된 '루시'는 6년 동안 임신과 출산을 반복해 척추가 휜 채로 발견됐을 뿐만 아니라, 뇌전증과 관절염까지 앓다 목숨을 잃었다.
이에 영국은 2018년 루시법 제정을 통해 펫숍의 6개월령 미만 동물 판매를 금지시켰다. → 표 참조

■ 고통받는 루시를 없애자. 한국형 루시법은?
'한국형 루시법'은 한국에서도 고통받고 있는 '루시'를 없애기 위한 시도다. 한국형 루시법은 이를 위한 첫번째 단계로 경매장 퇴출을 내걸었다. 눈두덩이처럼 불어나 버린 반려동물산업 속에서 고착화된 유통구조가 유발하는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 경매업장을 퇴출시키고, 번식업과 판매업의 수요는 감소시키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대표발의한 동물보호법 개정안은 동물의 경매 및 투기를 목적으로 하는 동물 거래 금지, 동물생산업자의 경우 60개월 이상인 동물의 교배 및 출산 금지·6개월 이상 동물 100마리 초과 사육 금지·유전질환 가진 동물의 교배 및 출산 금지 등의 내용이다.
법안을 제안한 김현지 동물권행동 카라 정책실장은 "경매업 퇴출과 생산·판매 일원화가 한국형 루시법의 취지"라며 "생산업자들이 경매장을 거치지 않고도 충분히 직거래를 통해 판매 가능하다.
분양자가 번식업장의 환경 및 모견을 보고 생산업자와 직접 분양을 진행하거나, 생산업장에서 모견과의 충분한 사회화를 거친 뒤 6개월 이상이 돼야만 펫숍에서 판매가능하게 하자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생산업자 면허제도 논의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 속도 못내는 루시법. 전문가들도 갑론을박
하지만 한국형 루시법은 반려동물산업 종사자들의 반발에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달 통과한 '개 식용 종식법'이 그랬듯, 관련 산업 종사자들에겐 생업을 잃을 위기로 다가오기에 반발이 거센 상황이다.
이들은 지난달 6일 위 의원 의정보고회가 개최된 날 제주 서귀포학생문화원 앞에서 집회를 열고 거리 행진을 이어갔다.
이어 지난달 23일에는 루시법 설명회 개최 예정이었던 서울 마포구 일대에서도 '맞불 집회'를 열어 강하게 반발했다.
지난 23일 집회에서 만난 20년째 도내 번식업장을 운영 중인 A씨는 "이미 규정에 맞춰 시설을 운영하고 있는데 한국형 루시법 등으로 규제가 강화되면 앞으로 어떻게 규제를 다 맞춰 운영해야 할지 막막하다"며 "생산자들 이야기를 더 귀기울여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다만, 법안의 세부 내용을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경기도수의사회 송민형 부회장은 "법안의 방향대로만 간다면 반려산업이 외국처럼 선진화되는 것은 맞지만 너무 급진적이라는 게 문제"라며 "개 식용 금지는 오랜 기간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논의된 것으로 아는데, 당장 경매업장과 판매업장을 내쫓겠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카라 측은 "법안 발의 과정에서 본래의 생산·판매 일원화 취지가 제대로 설명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며 "총선 이후 법안을 발의하는 과정 혹은 법안 심의 과정에서 반려동물의 세부 월령 수 등은 조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영지기자 bbangzi@kyeong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