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지난달 21일 선종
회칙 ‘Laudato S’ 기후 위기 비판
성 소수자 문제, 포용적·유연한 태도
韓개신교, 타 종교 배척 등 낮은 호감
검소함·약자 동행 ‘성찰’ 메시지로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에게 큰 위로를 주시던 프란치스코 교황(Pope Francis, 본명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2013년 제266대 교황 선출)이 지난 4월21일, 부활절 다음날 선종하셨다. 평소에는 크게 느끼지 못했지만, 막상 떠난 그분의 삶과 행동을 되돌아보니 깊은 울림과 애도와 상실감이 밀려온다.
그는 라틴 아메리카 아르헨티나의 가난한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신으로, 최초의 예수회 출신 교황이었다. 77세에 교황직에 오른 그는 예수회 특유의 교권주의와 거리를 둔 영성 중심의 수도회 정신을 잘 반영하며,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왔다. 교권주의와 거리가 먼, 그의 교황 임명은 당시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즉위 후 이름 선택마저 그는 교회의 영적 권위를 상징하는 이름들(예로들면 요한, 그레고리오, 베네딕토, 클레멘스, 바울 등) 대신 가난과 평화, 자연 사랑을 상징하는 ‘성 프란치스코’의 이름을 선택했다. 이는 ‘부와 명예를 버리고 가난한 자를 위한 교황, 소외된 자를 위한 교황’이 되겠다는 그의 평소 모습이 반영되었고 이름대로 사시다 가신 분이 되었다.
교황으로서 그는 2015년 회칙 ‘Laudato S’(찬미 받으소서)를 통해 자기 기도 목적을 세상에 밝혔다. 이 회칙은 지구적 기후 위기, 생태 파괴, 소비주의를 강하게 비판하며 생태 정의와 회복을 촉구하였다. 이는 환경 문제를 신학적, 윤리적 이슈로 끌어올린 획기적 분기점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교회의 신앙 회복뿐 아니라 성 소수자 문제에 대해서도 기존 교리의 엄격함을 완화하고 ‘누가 판단할 수 있겠는가?’(약 4:12)라는 성서 말씀에 따라 보다 포용적이고 유연한 교회의 방향을 제시하였다. 또한 평소 소신이던 종교 간 평화적 대화를 실현하고자 2019년 교황 최초로 아부다비를 방문해 이슬람 최고 지도자 세이크 아흐메드 알타예브(Sheikh Ahmed el-Tayeb)와 함께 ‘인류 형제애 선언’을 발표하였다. 이 선언은 ‘폭력과 종교의 분리’, ‘신앙 간 대화와 협력’, ‘종교 간 증오, 극단주의, 테러에 대한 단호한 반대’를 천명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내부적으로는 방만한 교황청 살림에 대해 바티칸 은행 개혁, 교황청 행정 기구의 구조조정 등을 통해 교회 조직의 투명성과 효율성 제고에 힘썼다.
이처럼 실천적 행동에 유연함과 상호 대화를 추구하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교회의 수장(首長)이라기보다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곁에 늘 있던 인자한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래서인지 그의 선종이 아쉽고 그리운 것은, 그의 삶이 자신의 종교를 초월한 범지구적 사랑의 실체로서 행동한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이에 반해, 지금 한국 개신교에서 이런 어른의 상(像)을 쉽게 떠올릴 수 없어 상대적 허탈감도 느끼게 된다. 2024년 한국 리서치의 종교 호감도 조사에 따르면 개신교의 비호감도는 타 종교 대비 거의 두 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그 주요 원인으로는 대형 교회의 교회 권력 사유화와 세습, 이에 따른 투명성 부족, 타 종교에 대한 배척, 목회자들의 비행과 부의 축적, 교인에게 지속적 헌금 강요 설교 등이 지적되었다.
또한 일부 목회자들의 과도한 정치적 행위는 신앙의 본질을 외면하게 하며 극단적 행동을 부추기면서 국민에게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는 요인이 아닌가 한다. 교회 사역의 본질은 예수 공동체의 목적, 즉 소외된 자, 가난한 자에 대한 우선적 위로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정치의 중심으로 뛰어들어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 원칙인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훼손하고 국민 간 대립과 증오를 조장하는 오늘의 현실은 깊은 우려를 낳게 한다.
이러한 한국 사회의 상황 속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검소함과 실천, 가난한 자와 소외된 약자를 향한 그의 동행은 오늘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예수의 지상 명령으로 다시 들려온다. 약자와 동행하지 않는 일부 개신교 목회자들의 행위가 회개되지 않고 교황께서 보여준 실천적 행위를 외면한다면, 한국 개신교의 위상은 앞으로도 더욱 부정적으로 변할 것이 자명하다.
/김영호 성공회대 일반대학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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