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의 사슬, 그 끝서 마주한 ‘의지의 사랑’

 

내전의 상처와 그리스 비극 서사 결합

피해와 가해 계속되는 ‘도돌이표 상황’

쌍둥이 남매, 전쟁의 참혹한 결과 상징

침묵의 사랑으로 비극 멈추는 어머니

인천시립극단 ‘화염’ 공연 모습. /인천시립극단 제공
인천시립극단 ‘화염’ 공연 모습. /인천시립극단 제공

올해로 창단 35주년을 맞은 인천시립극단은 지난 2~4일 LG아트센터 서울 U+스테이지에서 연극 ‘화염’을 공연했다.

인천시립극단 35주년을 기념하는 첫 번째 작품답게 지역에서 중앙을 관통하는 공연 무대 선정부터 도전적이고 자신감이 넘친다. 지난 2022년 서울식물원 내에 문을 연 LG아트센터 서울은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에 참여했으며, 개관 후 화제의 공연이 이어지면서 최근 가장 주목받는 공연장이다. 시립극단의 ‘화염’ 또한 사흘간 모든 공연이 매진을 기록하며 화제작 대열에 합류했다.

시립극단 ‘화염’은 지난해 4월 부평아트센터 해누리극장에서의 초연 당시 무대 위에 ‘디귿(ㄷ)’자 형태의 객석을 설치하는 파격을 선보인 바 있다. 올해 다시 공연하게 된 U+스테이지에서도 가변형 소극장의 특성을 살려 3면이 객석인 ‘ㄷ’자 무대를 연출했다. 2일 오후 7시 30분 공연을 찾았다. 가득 찬 객석에는 눈으로만 봐도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들이 앉아 있어 인상적이었다. ‘공연장의 힘’이라고 느꼈다.

원작은 1968년 레바논 태생의 캐나다 극작가 와즈디 무아와드의 희곡 ‘화염’(2003)이다. 원작자가 어린 시절 겪기도 한 1970~1990년대 레바논 내전의 상처와 그리스 비극 ‘오이디푸스 왕’의 서사를 절묘하게 섞었다. 2011년 개봉한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그을린 사랑’(한국 개봉명)으로도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다양한 키워드를 갖고 다층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연극이다. 지난해 초연에 이어 이번에도 ‘전쟁’을 키워드로 뽑아낸 관객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가자지구, 우크라이나·러시아 등 세계는 여전히 전쟁 중이기 때문이다. 극 중 고아원에 근무했던 의사의 말처럼, 민병들이 난민 캠프 밖에서 뛰어놀던 소년 세 명을 교수형에 처한 이유는 난민 캠프의 두 남자가 마을의 한 소녀를 성폭행하고 죽였기 때문이고, 두 난민이 소녀를 죽인 이유는 민병들이 한 난민 가족을 돌로 때려 죽였기 때문이고, 그 민병들이 그들을 돌로 때린 이유는 난민들이 민병들의 마을에 있는 집을 불태웠기 때문이고…. 증오의 사슬로 얽혀 어디가 처음이고 끝인지 알 수 없다.

쌍둥이 남매 잔느와 시몽은 그 사슬로 얽힌 전쟁으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참혹한 ‘가능성’ 혹은 이미 일어났을지도 모를 ‘결과’를 상징한다. 피해가 가해로, 가해가 피해로 계속되는 도돌이표는 결국 이것들이 합쳐지는 ‘1+1=1’로, 쌍둥이 남매로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스스로 자신의 두 눈을 멀게 하고 침묵으로 비극을 받아들이는 오이디푸스와 달리, 어머니 나왈 마르완은 사랑의 방식으로 침묵을 택하고 쌍둥이 남매에게 그 침묵을 이해하도록 한다.

이윽고 화염에 휩싸여 모든 게 타버리고 잿더미가 된 이후에도 두 대사는 끝내 남는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난 널 언제나 사랑할 거야.” “우리 함께 있으니 모든 게 나아질 거야.” 인천시립극단 이성열 예술감독은 연출가의 글에서 “이 작품은 ‘의지로서의 사랑’을 그려 보인다”고 했다. 배우들의 호연이 3시간의 공연 시간을 단숨에 빨아들였다. 3시간이 짧게 느껴졌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