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한 ‘범람 대비책’
해안도로 방호벽 턱밑까지 ‘출렁’
옹진군 덕적도, 작년 주택가 피해
올해 잠잠하지만 조사·대책 요원
‘재정의 벽’ 방재시설 구축 어려움

인천 옹진군 덕적면 북2리 이장인 김영길(76)씨는 지난달 29일 이른 새벽 4시부터 초조한 마음으로 마을 해안가를 살폈다. 음력으로 그믐 무렵인 이날은 조수 간만 차가 최대가 되는 대조기다. 평소보다 해수면이 크게 상승하기 때문에 바닷물이 해안가로 넘칠 우려가 있었다.
바닷물은 덕적도 북리항 해안도로의 방호벽 턱밑까지 차올랐다. 북리항 선착장 인근 물양장 일부는 잠시 물에 잠기기도 했다.
김씨는 “바닷물이 넘칠 수 있어 3일 내내 새벽부터 긴장했다”며 “혹시 몰라 모터(양수기)까지 준비했는데 이번에는 비가 안 내리고 파도도 잔잔해 주거지까지 물이 올라오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달 대조기에 예보된 인천의 최고 조위(해수면 높이)는 28일 922㎝(오전 5시2분), 29일 936㎝(오전 5시45분), 30일 926㎝(오전 6시28분) 등으로 전달 최고위보다 평균 15㎝ 가량 높았다. 이 시기 인천에는 해안침수경보(관심·주의·경계·위험) ‘주의’(906㎝) 단계가 내려졌다.
김씨가 새벽부터 일어나 동틀 때까지 주변을 살핀 이유는 지난해 8월 21~22일 겪은 침수 피해 때문이다.
당시에 연중 밀물의 수위가 가장 높아지는 음력 7월15일 전후 ‘백중사리 대조기’에 태풍 ‘종다리’까지 겹치면서 조위가 ‘경계’(953㎝) 단계인 960㎝ 이상 치솟았고, 덕적도 북리와 진리 등 해안도로와 주택가까지 물이 차올랐다.
김씨는 “옛부터 ‘사리’(대조기) 때면 선착장과 도로 등에 파도가 넘치긴 했지만 집앞까지 물에 잠기는 정도는 아니었다”며 “육지는 모르겠지만 바다가 코 앞인 섬에서는 바닷물이 과거보다 더 높이 차오르는 게 몸으로 체감된다”고 했다.
해수면 상승에 의한 침수 피해는 덕적도 한 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해 8월 백중사리 대조기 때 덕적도뿐만 아니라 신도, 장봉도, 백아도, 소야도, 선재도, 울도, 연평도, 소연평도, 대청도 등 인천의 여러 섬 지역에서 도로와 선착장, 물양장 침수가 광범위하게 발생했다. 심지어 육지와 다리로 연결된 영흥도 역시 진두항 인근 영흥파출소 앞 도로가 물에 잠겨 인근 상인들이 피해를 봤다. → 위치도 참조

김재홍 영흥남성의용소방대 대장은 “백중사리가 겹치는 8~9월 영흥도 남동쪽 해안도로에서도 침수가 자주 발생한다. 바닷물과 함께 온갖 쓰레기가 도로에 다 떠밀려와 주민들이 불편을 겪는다”며 “해안가 제방을 더 올려 바닷물이 넘치지 못하게 막는 등 주민 안전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인천 섬 지역 침수 조사와 대책 마련은 요원한 상태다. 그나마 인천시와 옹진군이 지난해 침수 피해가 컸던 덕적면 북리 해안도로 0.5㎞ 구간을 바닷물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정비한다는 계획을 내놨지만 아직 60억원(시·군 각 50%)에 달하는 사업비는 마련하지 못했다.
올 여름과 가을께 덕적도 등 인천 섬들의 침수 사태가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
신영희(국·옹진군) 인천시의원은 “인천 옹진군은 수도권에서 유일하게 섬으로만 구성된 기초자치단체이지만 정작 섬 주민을 위한 자연재해 예방책은 부족한 실정”이라며 “옹진군의 재정으로는 자체적인 방재 시설 구축이 어렵다.
인천시가 섬 지역 해수면 상승에 위기의식을 갖고 주도적으로 나서 중앙정부와 함께 맞춤형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조경욱기자 imja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