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마을 대상으로 첫 인류학적 연구

전경수 서울대 교수 학술총서 발간

가마터 발굴 의미… 미군정기 사회상 담겨

선두포 지역 마을 아낙네가 소가 돌리는 연자방아에 곡식을 찧고 있다. 아낙의 아들로 보이는 아이가 소 뒤를 따르고 있다. / ‘오스굿의 강화도 연구, 1947년’ 312쪽
선두포 지역 마을 아낙네가 소가 돌리는 연자방아에 곡식을 찧고 있다. 아낙의 아들로 보이는 아이가 소 뒤를 따르고 있다. / ‘오스굿의 강화도 연구, 1947년’ 312쪽

한국의 마을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인류학적 연구로 꼽히는 미국인 인류학자 오스굿(Cornelius Osgood, 1905~1983)의 1947년 강화도 선두포 마을 연구 자료를 분석한 결과물이 올해 초 국립민속박물관 학술총서로 발간됐다.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가 오스굿의 미공개 자료가 보관된 미국 예일대 등지에서 확보한 자료를 토대로 쓴 ‘오스굿의 강화도 연구, 1947년’에는 희귀하게 평가할 만한 해방 직후 미군정 시기 강화도 지역 마을의 사회상과 민속지적 가치를 풍부하게 드러낼 자료들이 대거 담겼다.

선두포 마을의 공동우물. 마을 공동우물에서 한 여자 어린이가 머리에 이고 갈 항아리에 물을 긷고 있다. / ‘오스굿의 강화도 연구, 1947년’ 318쪽.
선두포 마을의 공동우물. 마을 공동우물에서 한 여자 어린이가 머리에 이고 갈 항아리에 물을 긷고 있다. / ‘오스굿의 강화도 연구, 1947년’ 318쪽.

오스굿은 1947년 예일대 등에서 연구 자금을 지원받아 강화도 선두포 마을을 대상으로 한 민속지적 연구에 나섰다.

2개월여를 머물며 펼친 그의 연구 결과물은 1951년 ‘한국인과 한국 문화(The Koreans and their Culture)’란 책으로 발간됐다. 그가 선두포에서 수집한 민속품 200여 점은 예일대 피바디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그가 남긴 각종 자료들인 속칭 ‘오스굿 파일’도 예일대 스털링기념도서관에 2022년까지 미공개를 조건으로 기증돼 있었다.

정체불명의 집 구조물. 선두포 마을 어딘가에 서 있었을 집 구조물. 무엇을 위한 집이었는지 그 용도가 궁금하다. / ‘오스굿의 강화도 연구, 1947년’ 128쪽.
정체불명의 집 구조물. 선두포 마을 어딘가에 서 있었을 집 구조물. 무엇을 위한 집이었는지 그 용도가 궁금하다. / ‘오스굿의 강화도 연구, 1947년’ 128쪽.

전경수 교수의 이번 저작에서 주목할 부분은 오스굿이 남긴 미공개 사진 130여 점을 싣고 있다는 점과 오스굿이 선두포 일대에서의 고려자기 가마터를 발굴한 사실 등이다.

해방 직후 미군정기 사회상을 보여주는 강화도 지역 사진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오스굿의 강화도 연구, 1947년’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오스굿의 사진들을 좇아서 당시 사회상을 복원하는 후속 작업이 절실히 필요해 보인다.

1947년 당시 선두포 지역에 있던 옹기 공장의 굴뚝이 위로 오름 형태로 길게 뻗어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 ‘오스굿의 강화도 연구, 1947년’ 307쪽.
1947년 당시 선두포 지역에 있던 옹기 공장의 굴뚝이 위로 오름 형태로 길게 뻗어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 ‘오스굿의 강화도 연구, 1947년’ 307쪽.

오스굿은 또 선두포 고려자기 가마터에서 발굴한 수많은 자기 편을 미군 차량을 이용해 서울의 옛 국립박물관까지 옮긴 뒤 미국 예일대로 부쳐줄 것을 부탁했는데 아직까지도 이게 행방불명 상태다. 대규모 고려자기 가마터가 선두포 지역에 있었다는 내용은 학계에서도 그동안 알려져 있지 않던 것이어서 관심을 끈다.

갯벌의 배들. 선두포 앞바다 물이 빠지면서 드러난 갯골에 배 2척이 갯벌 위에 얹혀 있다. / ‘오스굿의 강화도 연구, 1947년’ 88쪽.
갯벌의 배들. 선두포 앞바다 물이 빠지면서 드러난 갯골에 배 2척이 갯벌 위에 얹혀 있다. / ‘오스굿의 강화도 연구, 1947년’ 88쪽.

전경수 교수는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 어딘가에 보관돼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면서 계속 추적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 관련 인터뷰 3면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