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굿이 발굴한 청자편 830점 찾으면, 전시수도 ‘강화역사 핵심’ 밝혀질수도”

 

미군정기 자료 정리 큰 숙제

자기 행방 알면 연구 등 쾌거

전경수 서울대 명예교수는 美 인류학자 오스굿의 미공개 자료 발굴을 계기로 체계적인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경수 제공
전경수 서울대 명예교수는 美 인류학자 오스굿의 미공개 자료 발굴을 계기로 체계적인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경수 제공

전경수(76)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는 올해 초 ‘오스굿의 강화도 연구, 1947년’을 펴내는 과정에서 아주 특별한 경험을 했다. 2023년 가을 학기 예일대학 동아시아연구위원회 객원교수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한 전 교수는 오스굿(Cornelius Osgood, 1905~1983)이 40여 년 전 예일대에 맡긴 봉인 자료를 개봉하는 주인공이 된 것이었다. 전 교수는 자신의 책에서 “그야말로 ‘오리지널’한 인류학사의 자료를 대하는 그 순간의 감흥을 잊을 수가 없다”고 썼다.

전 교수가 밀랍 봉인을 깨고 포장을 풀어낸 그 오스굿의 방대한 자료에는 1947년 강화도 선두포 방문 연구 성과가 담겨 있었다.

일본 가나가와대학(神奈川大學)에 연구 차 머물고 있는 그는 경인일보와 인터뷰에서 자신의 저서 ‘오스굿의 강화도 연구, 1947년’에 담긴 두 가지 가치를 특별히 강조했다. 오스굿의 미공개 사진 130여 장을 드러낸 것과 고려자기 가마터 발굴 사실 추적이다.

“미군정기 자료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않은 것이 우리의 큰 문제입니다. 제 책 후반에 있는 사진들은 강화도의 것임에 틀림이 없고, 그 사진들은 선두포 일대를 보여주고 있으니, 시간과 장소가 분명한 족보가 있는 사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사진 속 장소와 사람들을 따라가다 보면 수많은 의미 있는 것들을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전 교수는 또 오스굿이 1947년 여름 2개월을 강화도에 머물면서 선두포 지역에서 고려자기 가마터를 발굴했던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오스굿의 기록에는 남아 있는 고려자기 가마터 발굴 내용이, 당시 발굴 증거인 자기 편 수백 점이 행방불명돼 연구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점을 아쉬워 했다.

“오스굿은 당시 강화도에서 청자 편 830점을 발굴했습니다. 미군정기라는 특수 상황, 이어진 한국전쟁 등의 와중에 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연구에서도 그 행방을 끝내 알아낼 수는 없었습니다. 그것들을 찾는다면, 몽골 침략 동안 전시 수도 역할을 했던 강화도에 관한 역사의 핵심이 밝혀지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전경수 교수는 2018년 강화도 선두포를 방문해 오스굿의 방문 사실을 기억하는 주민들을 만나 인터뷰하기도 했다. 이 내용은 인천시와 국립민속박물관의 민속조사보고서 두 권에 실려 있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