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미상의 전기체(傳記體) 고대소설 '인현왕후전(仁顯王后傳)'은 한마
디로 주인공 인현왕후의 덕행록이자 찬양록이며 장희빈과의 선악대위록(善
惡對位錄)이다. 그만큼 인현왕후는 '仁顯'이라는 이름 뜻 그대로 어질고 착
했다. 장희빈의 농간으로 폐비가 됐어도 그녀에 대해서, 또는 지아비 숙종
을 향해 일언반구의 볼멘 불평도 나타내지 않았다. 그런 인현왕후의 인품
은 전적으로 아버지 여양부원군(驪陽府院君) 민유중(閔維重)에게서 받은 감
화 덕이었고 부전여전(父傳女傳)의 내력 그대로였다. 그는 조선왕조의 거유
(巨儒) 우암 송시열의 문하생으로 그 스승에 그 제자답게 경서(經書)에 밝
고 사림간에 명망이 높았지만 그보다는 숙종의 장인, 즉 외척(外戚)으로
단 한 마당의 세도도 부리지 않은 채 58세의 삶을 마감한 그 점으로 더욱
돋보이는 인물이다.
 성종 때 승지 벼슬로 있던 임금의 장인이 있었다. 그가 고급 자단향(紫檀
香) 목재로 호화주택을 짓고 뻐긴다는 소문이 성종의 귀에까지 들리자 그
를 불러 물었다. “그게 사실이렷다?” “소신이 어찌 그럴 리가 있겠사옵
니까? 추측컨대 소신을 모함하는 무리들이….” 그러나 임금이 측근을 시
켜 조사해 본 결과 사실이었다. 성종은 “지나치다”는 측근의 만류에도 들
을 여유조차 주지 않은 채 처형토록 명령한다. 또 남인(南人)의 거두 허적
(許積)이 전라감사로 있을 때 인조의 총애를 받던 후궁 조씨가 몸종을 보
내 사사로이 친정을 돕도록 청탁한다. 허적이 거절하자 권세만 믿고 날뛰
는 후궁의 몸종이 공갈을 친다. 허적은 즉각 때려죽이도록 명령한다. 이른
바 '절월(節鉞)'이 상징하는 '생살여탈권'을 유감없이 발휘한 것이다. 숙
종 때 영의정를 지낸 허적이 그 허적이다.
 조선왕조만 해도 늘 외척의 세도로 얼룩졌다. 대원군이 동기간(형제자
매) 없는 민규수(明成황후)를 며느리로 맞은 까닭 역시 요즘도 어느 TV에
서 방영중인 드라마 그대로 안동 김씨 외척의 60년 세도에 넌더리가 났기
때문이었다. 현대사는 어떤가. 이, 박 정권 때만도 건너뛴 외척의 세도는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숨이 찰 정도다. 작금 꼭 그 꼴의 한 단면을 보는 느
낌이다. <吳東煥(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