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외의 근사한 집에서 출발한 이민생활은 그러나 머지않아 뒤틀어졌다. 한국에선 명문대 출신에다 회사 간부까지 지낸 아버지였지만, 이곳에선 어떤 회사도 아버지에게 일자리를 주지 않았다. 살림은 급격히 쪼들렸다. 결국 아버지는 할렘 근처의 카드가게 의류공장 등을 전전하다 자그마한 세탁소 일로 어렵사리 삶을 꾸려가야 했다. 미국생활 10년, 아버지는 산더미같은 빚과 수치심, 인종차별, 따돌림 등에서 끝내 헤어나지 못했다. 그가 폭설이 내린 뉴욕동부 퀸스의 한 거리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졌을 때 그의 주머니엔 단돈 2달러가 들어있을 뿐이었다’. 몇해 전 아버지의 유골과 함께 고국을 찾은 어느 이민자 아들이 LA타임스에 기고한 글 내용이다. 한국계 이민자들이 꿈꾸는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힘들고 서러운 건 비단 아메리칸 드림에서만 겪는 일이 아니다. 코리안 드림을 좇아 한국에 몰려온 30만 외국인 근로자들의 애환과 고통도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는 것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형편없는 저임을 받으면서도 한국인들이 3D라고 기피하는 힘들고 더럽고 궂은 노동을 하루 12시간 넘게 감내하고 있는 게 대부분 그들의 삶이다. 그나마 그들의 약점을 이용한 임금체불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상습구타 성폭행 등 갖은 핍박에 시달리기도 한다. 오죽 견디기 어려웠으면 며칠 전 포천에선 100여명의 외국인 근로자들이 집단 파업을 벌이기까지 했다. 다행히 나흘만에 타결점을 찾았다지만, 지금 같아선 제2, 제3의 포천사건이 다시 없을는지도 의문이다.
미국 등 서방세계로 이민간 한국인들이 가장 고통스러워 하는 것도 바로 이같은 차별과 편견, 비인간적 대우라고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런 우리인데도 정작 국내의 외국인 근로자들을 갖가지로 핍박하는 걸 보면 세상 인심이라는 게 참 묘하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네가 미국 등에서 받는 서러움을 대신 그들에게 앙갚음이라도 하려는 유치한 감정들이 발동해서일까. 아니면 강자보다도 되레 더 약자를 괴롭힌다는 약자들의 소인배 근성일까. <박건영 (논설위원)>박건영>
묘한 인심
입력 2002-01-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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