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런타인 데이를 깔아뭉개 오징어를 만들어버린 설 연휴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설을 1월 또는 3월로 옮겨 달라”고 헌법재판소에 소원이라도 낼지 모르는 요즘 신세대들이다. '신인류(新人類)'라 불리는 그들에게 '밸런타인 데이'란 도대체 어떤 날인가.
재위 41∼54년(AD)의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Claudius)가 병사들의 아내 생각 등 사기(士氣)를 염려해 결혼금지령을 내린다. 그런데 후세의 사교(司敎) 발렌티누스가 금기를 어기고 병사들의 결혼식을 올려주다 체포돼 서기 270년 2월14일 처형된다. 그러니까 2월14일은 성 발렌티누스가 순교한 비극의 날로 그 영어 발음이 '밸런타인'이다. 그래서 마땅히 기일(忌日)로 치는 독일과는 달리 영국, 미국, 프랑스 등에서 애인 찾는 날, 사랑 고백하는 날이 된 것은 난센스다. 더구나 그날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멕시코 원산의 초콜릿을 사랑의 묘약쯤으로 알고 주고받는 것은 난센스의 제곱이다.
'밸런타인 데이'의 원래 모습은 초콜릿이 아닌 카드 주고받기였다. 현존의 최고(最古) 밸런타인 카드는 1415년 런던탑(감옥)에 갇힌 프랑스 시인 샤를 도를레앙이 아내로부터 받은 것이었다. 1843년 처음 나온 크리스마스 카드보다 몇 백년 전이다.
18세기엔 '젊은이를 위한 밸런타인 카드 쓰는 법'이라는 책까지 영국서 나왔다. 매년 이날이면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인 이탈리아 북부 베로나에 숱한 편지가 쇄도하는 것도 카드 주고받기 전통 때문이다.
그런 '카드 데이'를 '초콜릿 데이'로 둔갑시킨 것은 일본인들의 약삭빠른 장삿속이었다. 한데 일본 신세대들은 이날은 'VD 데이'라고도 한다. 비니어니얼 디시즈, 즉 성병의 날이다. 콘돔이 이날 그들의 최다 선물이 되는 것도 그런 연유다.
우리 YMCA가 89년 밸런타인 데이를 '우정의 날'로 바꿔 정한 것이나 98년 대학생 대중문화감시단이 '캔들 데이' 즉 촛불의 날로 삼자고 한 것은 다 그럴만한 결정이고 제안이었다. 명칭도 내용도 보다 멋지고 건전하게 바꾸는 게 좋겠다. <吳東煥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