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3월 김대중 대통령의 미국 방문때 일이다. 조지 W 부시 미국대통령이 김대통령을 가리켜 ‘디스 맨(this man)’이라 호칭, 결례가 아니냐는 논란이 인 적이 있다. 양국 정상의 공동 기자회견 자리에서였다. ‘디스 맨’을 직역하면 ‘이 사람’ 또는 ‘이 양반’정도의 뜻으로, 우리의 경우 흔히 상대방이 아랫사람이든가 허물없는 사이에서나 쓰여지는 말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조금은 경시하는 상대에게나 곧잘 써왔던 것이다. 양국의 문화가 달라서인지는 몰라도 당시 우리로선 결코 유쾌하게 받아들여지질 않았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크게 분개했고, 심지어 어느 국회의원은 백악관에 항의 편지를 보내기까지 했다. 하지만 미국측 관계자들은 단지 ‘친근감의 표현’이라며 사뭇 대수롭잖게 해명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얼마 전엔 부시 대통령이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에게도 똑 같이 ‘디스 맨’이란 표현을 썼다 하여 화제가 됐었다. 지난 달 18일 일본을 방문했을 때 고이즈미 총리의 개혁정책을 한껏 치켜세우면서 “나는 디스 맨의 지도력을 신뢰한다. 그의 전략을 신뢰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일본측 반응은 뜻밖에도 너무나 태연해 보였다. 어느 누구도 부시의 말을 걸고 넘어지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문맥상 칭찬하고 친근감을 표시한 것 아니냐”면서 “미국식 표현으로 볼 때 당연한 것이고…, 여하튼 우리는 그런 표현이 문제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고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이고 나섰다. 얼핏 대단히 너그럽고 아량이 있어 보이긴 하는데, 글쎄…. 아무렇지 않다면서도 굳이 장황한 설명을 늘어 놓는 모양이 왠지 좀 석연찮다. 애써 태연을 가장하는 것 같아 차라리 안쓰러워 보였다면 터무니없는 억측일까.
그런데 참 궁금한 게 있다. 보아하니 부시 대통령은 툭하면 ‘디스 맨’이란 표현을 즐겨 쓰는 모양인데, 어찌된 셈인지 중국에 갔을 땐 그런 표현을 사용했다는 소식이 아직 없다. 중국에선 김대통령이나 고이즈미 총리 만큼 친근한 상대를 찾지 못해서였을까, 아니면 거기 가서야 비로소 문화 차이를 알아차린 것일까. <박건영 (논설위원)>박건영>
친근한 상대
입력 2002-0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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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2-28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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