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동안 개미투자자들은 시시포스의 새로운 딜레마를 굳게 믿었다. 코스피지수가 사상최초로 2천을 돌파했을 뿐 아니라 증시주변은 온통 장밋빛 전망으로 도배된 때문이었다. 정부도 경기가 본격 회복 중이라며 한술 거들었다. 많은 이들은 향후에도 주가 상승랠리가 지속되는 등 황금시대가 도래한 것으로 판단했었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지난 16일 단 하루 만에 6.93%나 하락, 사상최대의 낙폭을 기록한 때문이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1천691.98로 마감했다. 장 마감 뒤 시가총액은 933조원으로 지난달 25일 2천을 돌파했을 때 1천103조원 대비 보름 만에 171조원이 사라졌다. 생전 보도 듣도 못하던 서브프라임 모기지 탓에 수많은 개미투자자들은 망연자실했다. 개미투자자들이 입은 손실은 기관투자가의 10배인 것으로 드러났다. 시시포스의 새로운 딜레마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순간이다.
미국발 신용경색으로 최대 피해를 입은 나라가 한국이다. 뉴욕증시가 기침하면 유독 한국증시만 지독한 감기에 걸린다는 속설이 다시 한 번 입증되었다. 한국경제의 기초체력이 상대적으로 허약한 탓이기도 하나 또 다른 이유는 한국증시의 고질적인 문제, 즉 경고시스템의 부재 때문이다.
원인은 개미투자자들과 외국인 큰손, 기업, 증권사들의 총체적인 모럴 해저드이다. 우리나라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에겐 '비관적 전망 자제'라는 불문율이 있다. 긍정적 전망은 틀려도 큰 질책을 받지 않으나 비관적 예측이 어긋날 때는 엄청난 비난을 각오해야 한다. 이해관계에 있는 개인투자자들의 거친 항의는 정도를 넘어선다. 애널리스트 개인에 대한 질타는 물론이고 해당 증권사도 한바탕 홍역을 치러야 한다. 외국계 큰손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들은 당근과 채찍 등 교묘한 방법으로 장 띄우기에 협조를 강요하고 있다. 관련 기업들은 부정적 의견을 낸 애널리스트를 고의로 물을 먹이거나 '왕따'시키곤 한다. 애널리스트들이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가 아예 업계에서 사라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개미투자자들이 일등 공신(?)이다. 이런 지경이니 우리나라 증시에는 장밋빛 전망 일색일 수밖에 없다. 부정적 의견이야말로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격이니 이해당사자들의 심정은 모르는 바 아니나 해도 너무했다. 이쯤 되면 주식시장의 발전은 고사하고 야바위꾼들의 투전판이나 진배없다.
레몬이란 과일이 있다. 연노란 색에다 모양 또한 앙증맞아 겉만 보면 군침이 절로 돈다. 그러나 한입 베어 무는 순간 강한 신맛에 몸서리치며 잘못된 선택에 후회하곤 한다. 소비자들이 레몬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었던 탓이다. 우리네 증시도 이와 똑같다. 이해관계자들의 공모(?)가 개미투자자들로 하여금 역선택(逆選擇)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럴수록 신용거래의 위험도가 높아진다. 국내 활동증권계좌 수가 932만개에 이르는 등 목하 경제활동인구 10명 중 4명이 주식거래를 하고 있다. 주식붐 탓에 손쉬운 대출루트인 은행권의 마이너스 대출액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정부규제로 증권사의 신용거래잔고는 지금은 4조원 수준이나 한때 7조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폭탄으로 변할 수 있다. 잘못된 투자관행이 시장환경을 더욱 취약하게 만드는 것이다.
언제까지 되로 주고 말로 받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해야 하나. 스스로 레몬을 선택하도록 만든 개미투자자들이 딱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