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부터 각종 선거때마다 시민단체들은 '태풍의 핵'으로 등장해 왔다. 비정치권, NGO의 성격을 무기로 시민들로부터 많은 호응과 관심을 유발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이 우후죽순격으로 선거에 개입하면서 객관적 기준보다는 시민단체 성향에 따라 지지와 반대로 갈리고 있다는 우려의 시각도 만만찮다. 제 17대 대선일을 100여일 앞두고 용광로처럼 끓어 오르는 이들의 움직임에 정치권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편집자주>

# 시민단체 정치참여 '시동'
 
 
지난 2000년 16대 총선 당시 각 당의 후보들은 한 시민단체의 선거운동에 덜덜 떨었다. 당시 총선시민연대가 낙선운동을 펼치면서 낙선 대상이 된 후보들의 상당수가 선거패배의 쓰라림을 맛봐야 했다. 이 운동은 이듬해 대법원으로부터 선거법 위반 판결을 받았고 이어진 민사소송에서도 시민연대 대표였던 박원순, 최열씨 등이 줄줄이 패소했지만 낙선한 후보의 선거결과를 되돌릴수 없었다는 점에서 엄청난 파괴력을 발휘했던 선거로 기억되고 있다.

오는 12월19일 대선을 앞두고 시민단체들의 행보가 분주하다. 과거 몇몇 시민단체가 선거과정에서 공약과 자격검증을 해왔던 방식에서 벗어나 이번 대선에서는 지지후보 당선을 위한 선거운동을 전개할 조짐도 보이고 있다.

공명선거실천운동협의회는 지난 6월12일 '2007 대선감시 및 후보검증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서영훈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 송월주 전 조계종 총무원장 등 각계 15명이 모여 특위를 만들고 각계 인사 100명으로 구성될 후보검증위원회를 구성, 효율적이고 실질적인 활동에 나설 것임을 천명했다. 100인 위원회는 각당 대선후보의 자질을 총 100개 항목으로 나눠 점수를 매긴뒤 검증한 점수를 11월에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1989년 설립된 공선협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선거감시활동을 벌여 왔으며 흥사단, 경실련, 바른사회시민회의 등 145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기독교윤리실천운동, 녹색미래 등 5개 중도진영 시민단체들이 참여한 '시민단체 사회적 책임운동' 준비위원회는 같은 달 "대선 정국에서 정치적 중립성을 지킬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분야별 시민단체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교육계에서는 진보와 중도, 보수 진영의 교육·학부모·시민단체들이 손잡고 '교육 대통령 만들기' 운동에 나서고 있다. '좋은 교사 운동' 등 11개 단체가 참여한 가운데 지난 7일 '교육 대통령을 위한 국민의 선택'을 출범시켰다. 복지 전문가와 시민단체도 지난 7월 각분야 전문가와 시민단체 활동가 300여명으로 출범한 '복지국가 소사이어티' 를 결성했다.

# 보수· 진보간 과열경쟁 우려
 
 
이렇듯 시민단체의 대선참여가 봇물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진보와 보수를 대표하는 시민단체들이 나란히 연합단체를 결성, 향후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치참여를 지향하는 시민단체들은 그 속성상 대부분이 진보성향이었다. 그러나 참여정부 이후 보·혁 갈등이 노골적으로 표출되기 시작하면서 건건마다 극한대립으로 치달아 이념의 양극화 현상을 빚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따라 이같은 보·혁 대립이 대선 과정에서 더욱 심각하게 표출되지 않겠느냐는 우려의 시각마저 나오고 있다.

뉴라이트전국연합, 국민행동본부, 헌법포럼 등 우파 진영 시민단체들은 지난 7월 '나라선진화·공작정치분쇄 국민연합(이하 국민연합)'을 출범시켰다.

이에 맞서는 진보진영 시민단체들도 숨가쁘게 움직이고 있다. 참여연대, 여성연합, 녹색연합, YMCA 등 메이저급 시민단체들도 지난 7월 '(가칭)2007대선 시민연대(이하 시민연대)' 준비위원회를 구성했다. 이들은 조만간 시민연대를 정식 출범시킬 예정으로 있다.

종교계에서도 보수파와 진보파가 제각각 시민단체들과 손을 맞잡으며 대선 행보에 나서고 있다.

보수 성향의 대표적 기독시민운동 단체인 '기독교 사회책임'을 중심으로 기독교애국운동, 기독북한인연합 등 20개 보수단체들이 연대했다.

진보성향의 교계에서는 지난 7월 한국진보연대 기독교 발기인 모임을 가졌다. 이들은 목회자들이 참여하는 새로운 형태의 진보운동을 천명했다. 40여개 진보단체 연합체인 기독교 사회포럼 역시 최근 진보세력 정권 재창출 방안과 관련한 토론회를 갖는 등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다크호스 네티즌
 
 
이번 선거에서 네티즌들은 어떤 영향력을 발휘할까.

선관위가 지난 6월 이용자제작콘텐츠(UCC) 등 인터넷에서의 선거운동을 이번 대선부터 금지시킨 것이 큰 변수가 되고 있다. 선관위는 인터넷이 여론의 향배를 가늠하는 핵심 변수로 떠오른 만큼 반드시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네티즌들은 선관위 조치는 유권자의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막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선관위의 이같은 조치 발표 이후 실제 인터넷에서의 정치활동은 상당부분 얼어붙었다.정치관련 게시물이나 대선 후보를 언급한 글들이 빠르게 줄어 들었고 주요 포털과 UCC 업체들도 인기 검색어에서 정치인 항목을 제외하거나 정치 동영상 서비스를 중단키로 하는 등 잔뜩 움츠린 모습이다.

지난 2002년 16대 대선 당일 오후 3시30분에서 4시 사이. 정보기관 사이에서는 이회창 후보가 노무현 후보를 앞서고 있다는 정보가 돌았다. 이같은 소식을 접한 '노사모'와 네티즌들은 휴대폰 문자메시지와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빠르게 상황을 전파하며 투표를 권고, 노무현 후보가 막판 뒤집기에 성공했다는 얘기는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선관위의 인터넷 선거운동 금지조치에도 불구하고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는 인터넷과 휴대폰 등을 통한 '최첨단 문명형 선거'가 이번 선거에서 얼마만큼 파괴력을 발휘할지 정치권은 그 분석과 활용방법에 골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