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중 정부 출범 첫해인 98년 10월 당시 이해찬 교육부장관은 가히 혁명적인 교육정책을 내놓았다. 점수위주의 획일적인 대입전형이 학생들의 창의력을 떨어뜨리는 만큼 수능비중을 축소하고 학생생활기록부와 논술고사 등 다양한 자료를 최대한 반영해 특기와 적성 위주로 선발하는 내용의 '2002학년도 대입제도 개선안'이었다. 무시험특별전형 확대가 골자다. 특기 내지는 학교 공부만으로도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등 공교육 정상화 및 사교육비 부담축소, 그리고 대학의 서열화방지 등 부수적인 성과도 담보되었다.
이를 계기로 항간에는 "시험 안보고도 대학 간다" 혹은 "한 가지만 잘하면 대학 간다"는 등의 인식이 팽배했다. 대학들은 경쟁적으로 기묘한 이름을 붙인 특별전형을 신설하면서 심지어 '미인대회 입상자'를 뽑는 경우도 등장했다. 학생들이 공부에 전념하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발표 3년후인 2002년의 대입수능시험성적은 예년에 비해 폭락했다. '이해찬 1세대'는 이렇게 해서 만들어졌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수험생들에 대한 정시모집 입시지도였다. 수능 전국석차가 일절 공개되지 않은 터에 수능성적표에는 원점수 외에 등급·표준편차 등의 생경한 단어들이 등장하고 대학들마다 각기 다른 모집요강을 발표함으로써 혼란이 극에 달했다. 영역별 가중치는 뭔 소린지 가방끈이 짧은 학부모들은 벙어리 냉가슴이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대입제도개혁을 한지 올해로 만 10년이 지났다. 긍정적 효과도 감지된다. 명문대 진학률의 수도권편중도가 많이 해소되었다. 내신성적만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수도 급증했다. 그러나 역기능은 더욱 심화되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매년 전 세계 15세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국제학업성취도비교(PISA)에서 과학이해력부문의 국가순위가 한국은 2000년 1등에서 2006년에는 11등으로 추락했다. 대학들도 고민이 크다. 학생들의 수학능력수준이 전반적으로 하향추세인 터에 수시모집 학생과 정시모집 학생들간에 학력차까지 벌어지는 탓이다. 목하 대학교수들은 강의수준을 어디에 설정해야할지 고민중이다.
또한 수능성적 제고는 고사하고라도 수행평가, 다양한 특기교육 탓에 과외시장이 세분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면접·논술까지 겹쳐 사교육시장은 더욱 비대해졌다. 가구당 월평균 과외비가 50만2천원으로 5년만에 무려 34.7%나 오른 점이 이를 방증한다. 사교육비 탓에 5년전에 자신의 소비수준이 중산층이라 생각한 사람이 10명중 8명이었으나 올해는 7명으로 줄었다. 사교육비가 사상최대를 기록하면서 소득 상하위계층간 사교육비 격차도 5.7배로 확대되었다. 이젠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올해 자녀를 정시모집을 통해 대학에 진학시키고자 하는 학부모들은 더욱 황당하다. 복잡한 석차산출 공식은 차치하더라도 작년까지는 그런대로 수능성적에 부합하는 대학을 가늠할 수 있었으나 올해는 마치 로또복권 뽑는 느낌이다. 대학들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어느 정도의 실력을 지닌 학생들이 입학할지 짐작조차 안된다.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입시설명회장을 전전하느라 발품팔기에 여념이 없으나 결과는 '혹시나'가 '역시나'일 뿐이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이란 말이 있으나 올 대학입시에는 운구기일(運九技一)이 작용할 전망이다. 각 당의 대선후보들이 이구동성으로 대입제도 개선을 공약한 만큼 어느 정부가 들어서든 현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한 수술이 불가피하다. 언제까지 학생들을 실험대상으로 삼아야 하나. 오늘은 제17대 대통령선거일이다. 55만여 수험생 학부모들의 투표에 임하는 심정이 어떨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