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한나라당은 전리품을 챙기려는 자 및 무임 승차자들로 마치 불난 호떡집마냥 시끄럽고 처연하다. 개중에는 전·현직 공직자들도 엄청 많다. 고위직은 물론 말단공무원까지 새 정부와 줄을 대려 안달이다. 이미 용도폐기된 퇴물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현 정부의 총애를 받고 있는 자들도 부지기수이다. 오죽했으면 동료 공무원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겠는가. 그럼에도 이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 눈치이다. 완장(?)을 찬 이들은 오히려 친정집을 향해 거침없이 저주의 독설들을 쏟아낸다.
지난주에는 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김만복 국가정보원장이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과 나눈 대화록을 자신이 언론에 유출시켰다고 자백한 것이다. 항간에는 그가 새 정부에 잘 보이려고 어이없는 일을 저질렀다는 설이 유포되고 있다. 진실은 검찰의 수사결과로 드러날 예정이나 항설(巷說)이 사실이라면 기가 막힐 노릇이다. 장관이 어떤 자리인가. 그것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부(權府) 최측근 부처의 수장이 아닌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충성차원에서 저지른 일이라면 그나마도 봐줄 수 있으나 새 정부에 잘 보이려 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면 이런 나라에서 국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서글플 뿐이다.
매천 황현(黃玹)은 말년에 "인간으로서 식자노릇 하기가 정말 어렵다(難作人間識字人)"고 실토한 적이 있다. 영국의 소설가 서머싯 몸도 대표작 '서밍업(Summing up)'에서 "인간은 일관되게 행동하기 어렵다"고 고백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일관되게 지조를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문제는 우리사회의 지도자들이다. 조지훈은 "지조가 없는 지도자는 믿을 수가 없고, 믿을 수 없는 지도자는 따를 수도 없다. 지조는 선비의 것이요, 교양인의 것이다. 장사꾼에게 지조를 바라거나 창녀에게 지조를 바란다는 것은 옛날에도 없었던 일이지만, 선비와 교양인과 지도자에게 지조가 없다면 그가 인격적으로 장사꾼과 창녀와 가릴 바가 무엇이 있겠는가"라며 지도자의 최우선 덕목으로 지조를 꼽았다. 백 번 양보해서 입신양명의 기회를 찾으려는 공직자들의 출세욕은 이해한다고 치자.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 하더라도 요즘 범부(凡夫)들에게나 어울릴 수 있는 '지조가 밥 먹여주나'란 잣대는 공직자들에겐 해당하지 않는다. 공직자들이야말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 명실상부한 리더들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개도 자신에게 밥을 챙겨준 주인만은 물지 않는다는데 인간이 그것도 5천만 국민을 이끌어가는 공직자들이 자신을 지켜준 주군(主君)이 권좌에서 물러나기도 전에 등을 돌린다는 것은 해도 너무했다.
정부부처 통폐합이 기정사실로 드러나면서 사상최대의 공무원수 감축이 예고되어 새 정부에 연을 대려는 공무원들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총선도 임박했다. 이번 대선을 통해 민심을 확인한 이상 철새정치인들의 한쪽으로의 쏠림 내지는 이합집산도 충분히 짐작된다.
이제 지조란 말은 박물관에서나 찾아야할 듯싶다. 그나저나 어린 학생들에게 고려의 마지막 충신 정몽주 선생이나 조선 선비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 주어야 할지가 걱정이다.